
PARK IN HYUK
몸이 지나간 풍경
The Landscape After the Body
박인혁
Park In Hyuk_Solo Show
Mar. 13 - Apr. 11, 2026
Opening | Mar. 13, Fri, 5-7pm
박인혁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 후, 프랑스 파리 4대학 미술사학과를 졸업, 파리1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2005년 부터 현재까지 파리에서 거주하며 서울과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The Landscape After the Body : 몸이 지나간 풍경>은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그에게 캔버스는 단순히 대상을 표현하는 평면이 아니라, 작가의 호흡과 리듬이 온전히 투영되는 ‘사건의 장' 입니다. 화면 위에 층층이 쌓인 물감의 층위와 절제된 색채는 작가가 인내해 온 시간의 흔적이자, 캔버스 위를 가로지른 강렬한 신체성(Gesture)이 남긴 살아있는 기록입니다. 그가 남긴 궤적들은 우리에게 몸이 지나간 자리의 숭고한 풍경을 선사합니다.
작가는 Shchukin 갤러리, IBU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3, 등 국내외 주요 거점에서 총 13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국내외의 미술관 및 주요기관에서 진행되는 기획전 및 단체에 40여 회 초대되며 평단의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서구의 조형 언어와 한국적 추상의 정신성을 결합한 그의 작업은 포스트 단색화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화단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글로벌한 감각 속에서도 한국 미술의 원형을 품은 그의 작업은 현대적인 세련미와 작가적 주관이 돋보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2년 간 준비한 미발표 신작 스물 여섯 점이 전시됩니다.
CRITIQUE
글 = 고충환(미술평론)
OPEN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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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회화는 형태를 쌓아 올리는 데서 출발하지 않고, 제스처를 통해 형상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포함한 신체 수련을 해왔고, 지금도 매일 몸을 움직인다. 이런 반복적 훈련을 통해 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감각과 기억, 시간과 경험을 담은 하나의 전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호흡과 움직임, 긴장과 이완의 리듬은 자연스럽게 화면 위의 선과 면으로 전환된다. 나는 미리 계획된 이미지보다, 몸의 순간적 반응을 따라 움직인다. 화면 위의 선들은 흔들리고 겹치며, 때로는 붓질 아래로 사라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완성된 형상이 아니라, 열린 상태로 남아 흔들리는 순간이다. 자연은 나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지만, 구체적인 풍경을 그리지는 않는다. 대신 성장, 침식, 숨김과 드러남과 같은 자연의 보이지 않는 힘과 흐름을 화면에 담는다. 선들은 뿌리, 바람, 물결, 혹은 땅속 진동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구체적 형상은 아닌 추상적 흔적으로 남는다. 결국 나의 회화는 몸과 자연이 만나는 에너지의 장이며, 끊임없이 생성되고 확산되는 움직임의 기록이다.
My painting begins not with constructing a form, but with releasing it through gesture. I have practiced martial arts since childhood and continue daily physical training. Through this long discipline, I came to understand the body as more than a tool, it is a vessel of memory, sensation, and time. The rhythms of breathing, movement, tension, and release naturally translate into lines and planes on the canvas. Rather than planning an image, I respond to bodily impulses. The lines are traces of movement, not drawings of objects. They vibrate, overlap, and sometimes disappear beneath layers of paint. What matters to me is not a finished form, but the unstable moments in between where forms remain open and unresolved. Nature is a fundamental source of inspiration, not as something to depict, but as a system of invisible forces. My works echo natural processes such as growth, erosion, concealment, and emergence. Lines may suggest roots, wind, waves, or currents, yet they remain abstract gestures rather than representations. Ultimately, my painting is a record of movement a field where body and nature meet, and where energy continues to unfold.
박인혁 Park In Hyuk
1977 Born in Korea (Bosung, Chunnam)
Live and work in Paris and Seoul since 2005
EDUCATION
2011 MFA Plastic art, Paris 1 University, France
2009 History of art, Paris 4 University, France
2004 BFA Fine Art, Chonnam University, Korea
SELECTED SOLO EXHIBITIONS
2022 Ponetive Space, Heyri, Korea
2020 Woong Gallery, Seoul, Korea
2019 Allmeart Space, Seoul, Korea
2018 Shchukin Gallery, Paris, France
2017 Gallery3, Seoul, Korea
2016 Woong gallery, Seoul, Korea
HollyHunt, New york, USA
Icare space, Issy les Moulineaux, France
2015 IBU Gallery, Paris, France
Lotte Gallery, Gwangju, Korea
2014 Ponetive space, Heyri , Korea
24 beaubourg , Paris, France
2013 89 Gallery, Paris, France
SELECTED GROUP EXHIBITIONS 2025 Gallery OAK, Toulouse, France Centre Culturel Coreen, Paris, France 2024 Jeonnam Museum of Art, GwangYang, Korea Geomjae museum of Art, Seoul, Korea Card Museum, Issy les Moulineaux, France Sabine Bayasli Gallery, Paris,France AD Gallery, Seoul, Korea(2personnes) Tres Gallery, Nantes, France(2personnes) 2023 Salon de H, Seoul, Korea Hakgojae gallery, Seoul, Korea AtoZ Gallery, Paris, France 24Beaubourg, Paris, France Kliz Gallery, Seoul, Korea(2personnes) 2022 24Beaubourg, Paris, France Card museum, Issy les Moulineaux, France Topohause, Seoul, Korea(2personnes) 2021 La maison juste Gallery, Paris, France Korean Culture Center, Paris, France 24Beaubourg, Paris, France Youngsun Gallery, Suwoon, Korea 2020 Card museum, Issy les Moulineaux, France Ibu Gallery, Paris, France Mudeung Gallery, Kwangju, Korea 2019 IBU Gallery, Paris, France Bastille design center, Paris, France Allmeart Space, Seoul, Korea 2018 Bastille design center, Paris, France Masan fruit market space, Changwon, Korea IBU Gallery, Paris, France 2017 Sonamou, Bastille design center, Paris, France KIAF, Woong gallery, Seoul, Korea 2016 KIAF, Woong gallery, Seoul, Korea Rituel&sortileges,Card museum,Issy les Moulineaux, France 2015 Interface, Korean culture center, Madrid, Spain Cross Sense, Gallery cité des arts, Paris, France 2014 Sonamou – son âme ou, Gallery cité des arts, Paris, France Black&White/Color, Card Museum, Issy les Moulineaux, France Entre deux , Gallery Michel Journiac, Paris, France Art Monie2, LA Korean Culture Center, LA, USA 2013 Gwangju Biennale museum, Gwangju, Korea Triptych, Lee C Gallery, Seoul, Korea Odyssey, Korean culture center, Washington, USA Korean young artist, Gallery cité des arts, Paris, France 2012 Passage of time, Gallery Michel Journiac, Paris, France 2011 Time and after time, 89 Gallery, Paris, France 2009 Para-Frontier, Busan Alliance Francaise, Korea Reflxion , Espace Sans Frontier, Paris, France PATHOS, Korean culture center, Paris, France 2008 Paris- Busan, Genie de la Bastille, Paris, France Trace, Taibout Gallery, Paris, France Residence 2022 Artlab-Wasan, Jeju, Korea 2020 Mirocenter residence, Gwangju, Korea 2018 Masan fruit market art residence, Changwon, Korea Awards 2014 The 1st Think Art Korea Selected Artist, Shinhan Hwa-gu, Seoul, Korea
EXHIBITION WORKS
EXHIBITION VIEW
ARTIST STATEMENT
작가가 된다는 것,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본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근에 파리 근대미술관에서 니콜라스 데슈탈(Nicolas de Staël) 전시를 보고 많은 생각에 빠졌다. 파리를 넘어 뉴욕에 이름난 화랑에 전시를 열고,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걷을 때쯤, 그는 41살의 나이에 남불 앙티브(Antive) 작업실 앞 절벽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였다. 지금으로부터 70,80년 앞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더 처절하게 한 작가가 데슈탈(De Staël)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너머에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그 사이의 불완전한 위치에서 오는 두려움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어려서 운동을 좋아했고, 신체를 수련하여 어떤 경지에 이르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유학자이면서 서예에 일가견이 있으셨는데, 어린 내 눈에는 그가 쓴 한문 글씨들은 인쇄된 것처럼 완벽해 보였고, 얼마나 수련하면 저 정도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내 몸을 수련하여 나를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요즘 내가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 Landscape » 이다. 흔히 풍경이라고 번역되는데, 나는 땅 Land에 포커스를 맞추어 « 땅의 풍경 » 이라고 칭한다. 인간이 개입된 땅과 인간이 개입되지 않은 땅에 대해 상상해 본다. 두 영역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 구상과 비구상의 표현이 모호해지는 지점이 내가 표현하고 싶은 Landscape 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붓을 사용하기 보다는 신체의 수련에 가까운 손짓과 몸짓의 원초적인 표현은 화면에서 자유분방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보는 이로 하여금 표현하는 이의 움직임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글=작가 박인혁, 2024
나의 회화는 몸에서 시작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수련해온 무술과 매일 반복되는 신체 훈련을 통해, 몸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감각과 기억, 시간과 장소를 담아내는 하나의 전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 몸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리듬과 호흡, 긴장과 이완의 변화는 화면 위의 선과 면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의 그림은 언제나 신체의 흔적이며, 몸의 사고와 몸의 기억이 시각적 흔적이 된 결과다. 작업의 과정은 직관과 계산이 공존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손으로 직접 긋는 선들은 즉흥적인 에너지, 충동, 순간의 진동을 담고 있다. 반면 붓으로 쌓아 올린 면들은 차분한 구조, 시간의 누적, 화면을 호흡하게 하는 질서를 형성한다. 이 두 가지가 부딪히고 화해하며, 화면은 하나의 리듬의 장(場)이 된다. 선은 파장처럼 떨리고, 면은 그 떨림을 품으며 공간을 확장한다. 나는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이 가진 생명력의 흐름, 보이지 않는 기운, 계절의 떨림, 풍경 이전의 풍경을 그리고 싶다. 화면에 겹겹이 쌓이는 선들은 뿌리, 바람, 혈관, 파도, 잔가지, 혹은 땅속의 진동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 형태들은 무엇을 닮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닮지 않은 비재현적 풍경이다. 그것은 존재의 미시적인 움직임, 그리고 세계가 생성되는 과정의 흔적이다. 나의 작업은 늘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완성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 그리고 몸은 언제나 변화하고 움직이며 계속해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화면 역시 멈추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며, 질서 속에서도 다시 흔들린다. 나는 이 혼돈과 질서의 동시적 존재를 회화로 드러내고자 한다. 최근에는 색과 선, 밝음과 어둠, 여백과 밀도를 대비시키며, 몸의 리듬과 자연의 진동이 어떻게 서로 울리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한 화면에 서로 다른 계절을 담거나, 미시적인 선들의 움직임 속에서 거대한 풍경의 기운이 드러나는 순간을 발견하기도 한다. 결국 나의 회화는 몸에서 출발해 자연으로 확장되고, 자연에서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순환의 기록이다. 그 기록은 언어 이전의 언어이며, 음악의 멜로디처럼 반복과 변주를 품고 있고, 생명의 떨림처럼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이 흔들림, 이 미완의 리듬 속에서 몸의 에너지와 자연의 시간을 이어 적어보고자 한다.
CRITICISM
상상력, 그리고 시간의 탄생 진승우(미술평론) 박인혁 작가는 시간에 대해 탐구하는 동시에 이 연구를 조형 언어로 구체화한다. 엄밀히 말하면 조형 언어를 통한 표현 자체가 시간의 탐험인 동시에 체험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시간이란 단순히 흐르는 추상적인 무엇이라기보다는 신체를 통해 구현되는 역동적인 힘, 운동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파리 1대학 조형 예술학과 재학 당시 작가가 선택한 주재료는 신문이었다. 르몽드 신문을 겹겹이 쌓아 풀로 붙여서 화석처럼 만들기도 하고, 그 위에 얼굴을 그리기도 했다. 신문은 하루하루 세계의 기록이며 흔적이다. 그렇기에 신문을 쌓는 행위는 달아나는 시간을 고정해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쌓이는 시간만큼 작가의 시간도 같이 축적된다. 작가의 시간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며 따라서 독특한 시간성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빅토르 프랑클은 과거는 불멸의 것이라고 했지만 그 자체 불멸의 것은 아니다. 과거가 영원하기 위해서는 달아나려는 과거를 붙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겹겹이 쌓이는 신문 속에 불멸에 대한 작가의 의지가 침전된다. 시간에 대한 연구는 얼굴 그림에서 더욱 심화된다. 얼굴 그림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내용이 명확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얼굴이 명확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린 얼굴은 관객이 그림과 밀고 당기는 놀이를 통해 관객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찾았을 때만 나타난다. 작가는 이 놀이를 위해 일종의 장치를 고안했다. 흰색과 검정을 섞어 만든 다소 음영진 색상과 조개 껍질 가루를 활용한 거친 붓질이 바로 그것이다. 얼굴은 바탕의 거침과 음영을 가로질러 관객에게 나타나며, 관객은 이를 통해 이중의 운동성을 체험할 수 있다. 꺼칠꺼칠한 터치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힘찬 움직임과 얼굴의 다가옴이라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며, 이 운동 속에서 작가의 정체성은 “있음”과 “없음” 사이 어딘가에서 부재의 방식으로 실존한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얼굴”처럼 작가의 얼굴은 “이방인”인 타인의 얼굴로만 “나타난다”. 최근의 그림에서도 시간과의 놀이는 계속된다. 최근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부드러운 색감과 이와 상반되는 거친 파스텔, 오일 파스텔 자국, 손짓의 흔적이다. 얼굴 그림과 마찬가지로 관객은 파스텔 색조 위로 서서히 드러나는 역동적인 힘과 숨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화폭 위에 여러 겹으로 층을 쌓았으며 작가가 제안하는 놀이의 핵심 요소가 바로 이 층이다. 관객은 캔버스 표면 뒤의 층을 발견할 수도 있고, 다양한 층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각할 수도 있다. 여기서 시간은 단순히 그림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관객이 자신의 눈을 통해 그림, 각 층과 놀이를 하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얼굴 그림에서 얼굴의 드러남이 시간성을 만들어 낸다면, 최근의 작품에서는 관객이 놀이를 통해 자신만의 시간성을 구성한다. 박인혁 작가에게 시간은 캔버스에 붙잡힌 자신의 신체적 노력임과 동시에 관객이 시선을 통해 창조하는 시간이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 풍경 »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작가가 말하는 풍경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연 풍경, 눈에 보이는 자연이라기보다는 풍경을 눈 앞에 펼쳐지게 하는 어떤 힘이다. 어쩌면 초봄에 느껴지는 벌거벗은 나무에서 잎, 꽃이 날 거라는 예감, 자그마한 들꽃에 깃들어 있는 생명력에 대한 감탄 같은 것은 자연의 힘에 대한 느낌일 것이다. 영감, 뮤즈(Muse)로서의 자연은 자연에 내재하는 정신적인 힘, 삶의 의지, 영혼의 힘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자연의 생동하는 힘이자 정신적인 힘을 상상력이라고 불렀다. 시간을 붙잡으려는 노력, 기억을 응축하는 힘은 자연에서 비롯한 상상력이며, 작품이 상상하는 힘에서 나온 것일수록 상상력은 캔버스를 넘어 관객을 둘러싸게 된다. 작가의 상상력은 점점 더 커지는 불이 되어 이윽고 관객의 상상력으로 옮겨붙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관객은 자신의 시선과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작가가 의도해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느끼고 예감한 자연의 힘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작가는 자신의 숙명과 기꺼이 함께하는 것이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으므로 의도한다. 그는 자연을 받아들이며 자신도 자연이 된다. 그렇게 그의 풍경은 외적이며 동시에 내적인 자연으로서의 풍경이 된다.
한계를 넘어 생명의 풍경으로 김진엽 (미술평론가, 전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1. 박인혁의 작업은 2000년대 파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작가는 프랑스로 유학의 길을 택한다. 작가의 말로는 처음 파리에 왔을 때는 작업에 대한 흥미를 잃어 다른 분야의 일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파리의 미술관이나 갤러리, 타국에서 온 작가들을 만나면서 작업에 대한 흥미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느꼈던 예술에 대한 좌절감이 부담감 없이 예술을 접하는 새로운 환경 때문에 작업에 대한 의욕이 다시 생겨난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옥죄어오던 예술의 무거운 그물망을 벗어 던지게 되고, 예술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느끼면서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구상형태의 직업에서 추상으로의 변모가 이때부터 나타나는데 그렇다고 박인혁의 작업을 완전히 추상으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깊은 바다의 파도의 일렁거림이나 깊은 숲속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박인혁의 화면은 형상과 비형상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업이다. 이러한 의미 중심의 조형언어가 바로 박인혁 작업의 특징인 것이다. 2. 화면은 바탕색을 여러 번 겹치면서 긁어내거나 흩트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긁어내는 작업을 통해 화면의 선과 색채는 급격하지만 일정한 조화를 이룬다. 이것은 이미지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방식인데, 마치 눈길에서 계속 이어지는 발걸음처럼 사라지지만 다시 나타나는 환영처럼 이미지가 이미지를 부르는 방식이다. 그래서 박인혁의 화면은 순수의식에 투영된 환원이라는 추상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으로, 이미지들이 저절로 쌓아지고 무너지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편린들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삶을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형상과 추상의 의미를 넘어 삶의 본질에 다가간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면서 박인혁의 이러한 이미지들은 과장을 거부한다. 즉 박인혁의 조형언어는 결정된 의미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결정될 의미를 우리에게 던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종횡으로 이루어지는 선들은 어느 순간 방향 없이 화면 전체로 퍼져 나가고 뭉쳐진다. 그러면서 선들은 이미지로 변하면서 연쇄적으로 생성되고 무한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연속은 과거의 불안을 담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느낌을 명확하게 해준다. 즉 과거가 되는 현재의 순간순간을 묘사하는 이러한 방식은 의미를 통해 과거를 현재화시키고 현재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반복을 통해 리듬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이미지로 다른 이미지를 소환하는 것은, 이미지와 사물의 미묘한 틈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통해 무한대의 공간과 삶의 고요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박인혁이 새롭게 발견한 예술의 의미이며 무한한 공간의 적막함을 통해 자유로운 존재의 구현을 꿈꾸는 것이다. 3. 올해 프랑스의 전시에서 박인혁은 이전의 작업보다 밀도를 높이고 있다. 긋거나 문지르는 방식을 다양하게 해서 집중도를 높이고 다양한 색채의 사용으로 생명력 있는 공간을 형성한다. 이것은 삶의 지형도를 구체화시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상성에 매몰되지 않고 초월적이지도 않은 삶의 긍정을 강화 시키는 공간의 지형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전의 무한의 공간과 고요에서 작가는 이제 강력하게 삶을 긍정하는 목소리를 낸다. 일상의 갈등과 고뇌, 절망이라는 과거의 생명의 공간을 현재화시키면서 하나의 풍경으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풍경은 현재의 지평에서 과거를 쳐다보고 현실을 직시하는 풍경으로 무거움 대신 경쾌하면 생동감 넘치는 몸짓으로 다가온다. 또 이러한 풍경은 대상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내면에 자리 잡은 의식의 풍경이다. 이것은 삶의 여정에서 나타나는 풍경이기 때문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풍경이다. 복잡한 듯이 보이는 화면은 사실상 경쾌한 화면이다. 모든 욕망을 비움으로써 나타나는 새로움의 경지, 그 경지에서 우리의 열정은 다시 살아나고 긍정적인 삶은 다시금 느낌이 된다. 과거의 절망과 현재의 냉엄함, 미래의 불안은 의식의 풍경이 가지는 영원의 시간 속에서서로 만난다. 이러한 지평의 융합에서 삶을 관조하고 체험하는 예술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제 나무와 숲, 강과 바다는 감상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삶의 현실이 된다. 그래서 박인혁의 그림 속의 풍경은 더 이상 정지된 풍경이나 묵시적인 세계가 아니다.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강렬한 삶의 의지가 숨 쉬고 있는 근원적인 풍경이며 이러한 풍경이 바로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박인혁에게 있어 예술은 우리의 삶과 이미지의 삶을 함께 포옹하며 유한과 영원을 화해시키는 매개체이다. 예술 장르의 구분을 넘어서는 이러한 화해의 세계는 삶의 경이로움을 새롭게 인식하고 존재의 원천으로 다가가는 세계이다.
박인혁 작가와의 대화 심은록(SIM Eunlog) 미술비평가, 감신대 객원교수 심은록. 스포츠[태권도]에 상당히 심취하시고, 도불 이후에도 한동안 프랑스 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화가로서는 독특한 경력이 아닌가요 ? 박인혁. 이브 클라인도 유도 유단자이었습니다. 그는 유도를 배우려고 일본까지 갔었습니다. 1960년 10월 16일, 클라인이 작은 주택 지붕의 타원형 창문(œil-de-boeuf)으로부터 공중으로 몸을 날려 점프를 했던 도 그가 유도 낙법을 잘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퍼포먼스였습니다. 같은 해 11월 27일자 일기에, 그는 이 퍼포먼스의 제목을 “공간 속의 한 남자! 공간의 화가가 허공 속에 몸을 던지다”(« Un homme dans l’espace ! Le peintre de l’espace se jette dans le vide »)라고 명명했습니다. 또 다른 퍼포먼스나 퍼포먼스의 결과인 모노크롬을 볼 때도 이브 클라인의 신체와 운동감에 대한 독특한 느낌이 잘 드러납니다. 심은록. 쿵후, 태권도, 유도, 같은 동양의 스포츠에는 공간과 몸의 관계가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공간 속에서 몸의 움직임이 때로는 서예의 획과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런 느낌은 서구의 스포츠에서는 가질 수 없습니다. 클라인이 공간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을 지녔기에 서구 스포츠보다 동양의 스포츠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느낌이나 색은 많이 다르지만, 작가님께서도 모노크롬이면서 항상 신체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브 클라인의 블루 시기의 (anthropometries)에는 너무나 강력한 신체와 제스쳐가 분출되어 나옵니다. 반면에, 작가님의 작품 (Another landscape)은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이 전체가 검은, 완전히 검은 것은 아니고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의 거므스레함에서, 가만히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일정하지 않고 방향을 알 수 없는 거친 붓자국으로부터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얼굴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운동감이라고 하기에는 약한 일종의 '드러남' 입니다. 박인혁. 작품 자체로는 움직임이나 제스쳐가 바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언급하신 것처럼 그냥 깨끗하고 단순한 그런 맑은 검은색이 아니라 뭔가 있을 것 같은 거므스레한 색에서, 관람객들은 혹시나 뭔가 있나 싶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우연히 그림 속의 초상을 발견합니다. 일단 이와 같이 그림에서 초상을 발견하면, 관람객들은 자신의 눈을 움직이며 다음 그림에서도 또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주 예민한 관람객들은 때로는, 검은색 깊은 곳에서 하얀색, 파란색, 붉은색, 흰색, 주황색, 등도 있음을 감지 하기도 합니다. 저는 사실 이와 같은 다른 색을 첫 바탕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 다시 여러번 검은 색을 칠하기에 검은색 가운데 아주 미세하게 다른 색의 뉘앙스가 배어 나옵니다. 또한 때로는 캔버스를 대각선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색을 첫 바탕색으로 칠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캔버스의 반은 검은색, 또 다른 반은 하얀 색을 첫 바탕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 다시 여러 번 검은 색을 칠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심은록. 한 작품으로 처음에는 모노크롬 혹은 “단색화”를, 그 다음에는 구상적 추상화 그리고는 기하학적 추상화까지 느끼게하는 거네요. 관람객들 스스로가 움직임을 갖게끔 하는 작품이군요. 지난 번 24 보부르 갤러리(24 beaubourg gallery , 파리) 초대전에서, 한 관람객이 무심하게 그림을 보면서 지나가다가, 어느 순간 그림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뒤로 되돌아가 첫 그림부터 다시 차근차근 관람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처음의 이 관람객처럼 그림 속의 초상을 미처 못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선명도를 조정하시는지요? 박인혁. 개인전의 경우에는 여러 작품이 전시되니까, 처음에는 미처 인식을 못했다가도 어느 순간 그림 속의 초상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한 점이나 두 점을 전시할 때는, 관람객들은 단지 거무스름한 모노크롬으로 인식하고 그냥 지나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림을 그리면서 늘 갈등합니다. 관람객들이 검은 그림 속에 얼굴을 못알아 보면 어떡하나 싶어서 다소 드러나게 하다가도, 또 너무 쉽게 드러나는 것 같아 얼굴을 뭉게고, 그러다가 또 너무 뭉게진 것이 아닌가 싶으면 조금 더 세우기도 하고요.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계속 갈등합니다. 어떤 때는 더 많이 감추고 싶고, 어떤 때는 더 드러내고 싶습니다. 또한 전시장에도 빛과 환경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기에 이런 부분도 생각하면서 많이 갈팡질팡합니다. 심은록. 연작과 신문지를 사용하는 작품 에도 사람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주로 젊은 남자의 얼굴 같은데, 작가님의 자화상 인가요 ? 자화상이 아닌 경우에는 모델은 어떻게 구하시는 지요? 박인혁. 처음에는 제 자화상을 주로 그렸고, 이제는 주로 아시아 인들을 그리고 있어요. 머지 않아 아시아인 말고 다른 인종도 그릴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의 초상화를 그릴 경우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전세계의 초상 사진을 많이 보면서 착상을 얻습니다. 신문 작업을 할 때도 제 얼굴을 그리기도 하지만, 마티에르로 사용된 신문 그 자체에 게재된 사건의 인물들을 제 나름대로 끄집어 내서 그리기도 합니다. 심은록. 신문지를 마티에르로 작업하신 것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되었는지요 ? 사용하신 신문지가 모두 르몽드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 박인혁. 르몽드 지를 사용한 이유를 먼저 말씀드리면, 처음엔 르몽드 지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신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독을 하게 되었어요. 계속 구독을 하면서, 좋은 미술평도 접하게 되고, 사진 수준도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중동 소식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작품을 위한 마티에르로써 적합했다는 것인데, 초상화 그리기에 적당한 크기에다가, 광고가 화려하거나 다양한 원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고 무난한 색에 무난한 수준이라 제 회색톤의 그림을 그리는데 다른 신문들보다 적합하다고 느꼈습니다. 신문 상의 작업은 2009년부터 시작했는데, 두 가지 커다란 이유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외국에 나와 살며 작업하다 보니, 이방인으로써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지금은 다소 덜 논의가 되는데, 제가 도불할 당시만 해도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제 얼굴을 그리면서 존재감의 표현과 함께 이방인으로써의 아이덴티티를 구체화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존재감이나 아이덴티티가 더 명료해 지는 것이 아니라 흐릿해 지고, 자아의 얼굴이 타자의 얼굴처럼 되어가고, 결국에는 타자가 되었어요. 그리고 에서처럼 초상이 아예 어둠 속에서 공간화 되어가기도 하고요. 두 번째 이유로는, 신문활자로 인해 전반적으로 회색의 흐릿한 배경인 신문지 위에다가 처음에는 검정과 흰 색을 섞어서 회색 톤의 유화로 그렸습니다. 단순한 생각으로 그리면서 노동 자체에 의미를 두고 하루에 한 장씩 그렸습니다. 당시 삶의 조건 때문이었는지 조형보다는 일상사의 노동과 하루하루 지나는 시간성(날짜)에 의미를 더 주고 싶었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이처럼 명료한 이유들을 가지고 작업을 했던 것은 아니고, 작업을 해 나가면서 “내가 이러한 작업을 왜 하는가?”하는 고민 과정에서 알게 된 것입니다. 심은록. 무채색 계통의 작품과 전혀 다른 유채색, 그것도 순도 높은 붉은색 작품도 하고 계시는데, 이 작품에는 아무리 이리저리 보아도 얼굴은 보이지 않네요. 어찌보면 서정적 추상화 같기도 한데, 자세히 보니 날짜가 무한히 찍혀있습니다. 오랜 작업시간을 요할 것 같은데,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처럼 역시 일상적 노동이라던가 시간성의 축척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건가요? 박인혁. 매일같이 제가 하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작업입니다. 붉은색으로 하게 된 것은, 프랑스에 스탬프 인주로는 파란색, 검은색, 붉은색이 있는데, 제 작업이 모두 회색톤이라서 빨간색이 풍성해지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선택했습니다. 프랑스 관공서에서 주로 사용하는 연월일을 표시하는 스탬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월 표시는 JAN, FEV, MAR (1월, 2월, 3월), 등 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아틀리에에 출근하면 노동자라는 심정으로 아무 의미없이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정도 이렇게 날짜를 찍습니다. 오늘[인터뷰한 날짜]은 2월 9일이니까 “09.FEV 2015”를 두어시간 정도 찍었습니다. 한 번 인주를 묻혀서 인주가 거의 사라질 때까지 찍고, 또다시 인주를 찍어 반복 합니다. 수채 와트만지 10미터 롤종이를 사용하는데, 지난 번에 전시 할 때는 8미터 정도 되는 작품이 나왔습니다. 아무런 의식없이 그냥 찍는데, 다 찍어 놓고 보니 무슨 지층 같기도 물결같기도 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가끔은 의도적으로 나무테처럼, 방사적 원형 형태도 하지만, 대부분 작품은 특별한 의도 없이 그냥 찍어 나갑니다. 종이를 나무판(합판) 위에다 두고 찍는 데, 그 소리를 녹음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심은록. 이러한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 “시간 붓기” 작업을 하시게 된 동기는요? 박인혁. 시간을 엮는 것처럼 시작해서, 시간 위에 시간이 중첩되면서 시간이 뭉개질 때까지 계속 스탬프를 찍습니다. 사실 제게는 시간을 뜨개질 하는 것으로, 무의식적 반복을 표면화한 것입니다. 80년도 중후반, 제 어머니께서 실을 쌓아놓고 뜨개질을 하셨습니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다른 일을 하시면서 틈틈이 뜨개질을 하셨기에 많이 하시지는 못하셨습니다. 눈에 뜨이지 않는 그러한 일상의 노동을 해오셨던 어머니께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저도 그처럼 시간을 뜨개질해서 하루하루 시간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일종의 수련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심은록. 작가님의 위치가 서구의 모노크롬과 한국의 단색화 사이에서 어디 쯤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박인혁. 서양의 모노크롬과 동양의 단색화 사이에서 저의 위치를 어디다 어떻게 두어야 할까 하는 것이 사실 늘 고민이었고 지금까지도 항상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제 입장에서 제가 만난 서양에서의 모노크롬은 마티에르 그 자체로 보여졌습니다. 반면에 동양의, 좀더 정확히는 한국의 단색화는 자신의 살을 스스로 깍아내는 듯한 모진 반복성과 도를 닦는 듯한 정신적인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후자의 느낌은 아무래도 이우환 선생님께서 작업하시는 모습을 자주 뵈어서 그런 느낌이 더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신문지 작업은 모노크롬처럼 마티에르 적인 경향이 더 보이고, 검은 작업은 단색화처럼 정신적인 부분이 좀 더 부각되어 보이지만, 사실은 양 쪽을 오가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또한 추상이면서 구상이기도, 혹은 추상도 아니면서 구상도 아닌 그 사이와, 조금 더 모호해 지려는 것과 조금 더 명료해 지고 싶어 하는 그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찾아오는 길 안내
아래 하단에 주차 및 교통편에 대한 안내가 있습니다.
대중교통 이용을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