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ON BEOM
KIM JAENAM
문범|김재남
Moon Beom | Kim Jaenam
May 16 - Jun 14, 2025
Reception | May 16(Fri), 6-8pm
운중화랑 개관 5주년 기념초대전
운중화랑이 개관 5주년을 맞았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고즈넉한 주택가 한 모퉁이에서 시작된 역사. 과감한 도전이었다. 불확실한 모험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우려가 무색할 만큼 정상궤도에 안착했다. 그동안 축적한 성과와 행보가 이를 방증한다. 로컬에 기반을 둔 갤러리로 입지를 굳혔다. 동시대성을 반영한 ‘살롱’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민간이 운영하는 시각문화 매개 공간의 모범사례라 할만하다.
운중화랑이 개관 첫해부터 선보여온 연례 전시 중 하나가 <동행>이다. 작가 두 명을 선정해 짝지어 함께 소개하는 형식이다. <문범 김재남 2인전>도 기본 콘셉트는 같다. 다만 <동행>은 100% 운중화랑 자체 기획이었다면, 이번엔 필자가 준비 과정에 일부 관여한 점이 조금 다르다. 그러니 이 전시는 <동행>의 변주곡(變奏曲) 또는 번외편(番外編)으로 봐 주기 바란다.
은둔자(隱遁者). 세상과 단절하고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타인의 시선과 관심에서 벗어나 조용히 사는 사람을 일컫는다. 범인(凡人)은 쉽게 헤아리지 못하는 삶의 방식이자 태도다. ‘고독과 은둔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떠오른다. 유대교 공동체에서 파문당한 후, 평생을 변방에서 은둔하며 안경렌즈를 세공하며 살았던 사람. 누구 뭐래도, 그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문범의 근래 생활이 그러하다. 교수직 정년 퇴임 이후 칩거(蟄居)에 들어갔다. 스스로 선택한 침잠(沈潛) 기간이 어언 5~6년이 족히 흘렀다. 그 사이 몇몇 전시를 통해 일부 작품을 간혹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온전히 그의 뜻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컬렉션 된 소장품을 그들 임의로 내보인 것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가 새삼 귀하게 여겨진다. 무엇보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근작을 볼 수 있다. 또한 대표작 <slow, same> 연작 중 작가가 가장 애착하는 작품을 직접 엄선해 선보인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하지 않았던가? 국내외 미술계에 각인된 그의 명성이 허명(虛名)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문범의 회화는 이른바 ‘단색화’로 불리는 모노크롬 계열 여타 작품과 차원이 다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 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경지다.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룬 세련미(洗練味)다. 익히 알려졌듯, 문범은 붓으로 그리지 않는다. 딱딱한 오일 스틱(oil stick)을 사용한다. 막대 형태로 가공된 유화 물감을 먼저 바르고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비비면서 형상을 만든다. 범접할 수 없는 독창적 테크닉이다. 이런 제작 방식을 통해 ‘신체성’이 개입되고 ‘시간성’이 발산된다. 자가증식 하듯 피어난 이미지는 몽환적이고 신비하다. 표면 질감은 얇고 매끄럽다. 때론 반짝인다. 맑은 겨울날 하늘처럼 청량하고 투명하다. 절제된 색채는 미묘하다. 번지듯 펼쳐진 빛깔은 울림과 떨림으로 율동한다. 관객의 시선은 홀연히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한순간 화면 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문범이 창조한 감각세계는 생동하는 소우주다. 박제(剝製)처럼 경직된 암흑세계가 아니다. 살아서 호흡하는 유기체적 사물이다. 변화하는 생명력을 간직한 ‘특별한 오브제’다.
타불라 라사(TABULA RASA). ‘깨끗한 글판(書板)’, 즉 ‘텅 빈 화면’을 뜻하는 라티움 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아무런 선입견이나 경험 없이 깨끗한 영혼을 지닌 채, 백지(白紙)상태로 태어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인간 본성을 두고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따지는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여하튼, 김재남 그림을 보며 다시 떠오른 말이 타불라 라사다. 예전에 김재남 작품에 대한 짧은 글을 쓴 적 있다. 그 글 첫 문장은 “음악은 침묵에서 시작된다.” 였고, 이어서 “그림의 시작도 그렇다. 텅 빈 화면은 침묵이다. 무엇이 그려지기 이전 백지상태 캔버스는 무한한 가능성이 내포된 잠재태”라고 썼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김재남 그림을 보면 여전히 그려지기 이전 텅 빈 화면이 떠오른다. 김재남의 회화는 날것 그대로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다. 한땀 한땀 정성껏 수(繡) 놓듯 목탄으로 물결무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겉으로 드러난 수면(水面)으로 보이지 않는 심연(深淵)을 표현한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 형상은 깊은 마음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절제된 흑과 백의 어울림은 ‘텅 빈, 충만(充滿)’을 상징한다. “필연은 늘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영국인 역사학자 E.H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가 한 말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그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고 규정했다.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난 데는 반드시 그에 합당할 만한 이유(과거)가 있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사건의 인과율(因果律) 총합이 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통찰이다. 비슷한 예로 불교를 들 수 있다. 불교 대표 교리 중 하나가 연기법(緣起法)이다. 그 핵심 키워드는 인연(因緣).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이뤄진다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놀랍게도 최신 과학을 다루는 이들도 이와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다. 현대물리학 중심 두 축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그러하다. 요즘 과학자들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 간 ‘관계’를 연구한다. 이처럼 인문학-종교-과학, 제각기 분야는 달라도 세상을 해석하는 생각 틀은 크게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예술-미술도 그렇다. 예컨대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를 생각해 보자. 갤러리-전시를 단순히 작품을 보여 주는 것으로만 치부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그 참모습은 단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과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비유하자면, 갤러리는 몸이고 전시는 몸짓이다.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상태. 서로 떼 놓고 볼 수도 있지만 완벽하게는 분리해서 볼 수 없는 형국이다. 따라서 갤러리는 존재와 인식이 상호작용으로 얽히는 물리적 공간이고, 전시는 물질과 정신이 상보성원리로 조화를 이루는 현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갤러리와 전시의 관계는 병립(竝立)이 아니라 중첩(重疊)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범과 김재남 작품이 운중화랑에 나란히 걸리게 됐다. 두 작가는 사제지간(師弟之間)이다. 그 인연의 세월이 어언 33년. 지금까지 혈연에 버금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연한 만남이 씨앗이 되어 오늘 열매 맺었다.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현장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인과론적 상호작용이다. 필연을 향해 전개되온 관계성이 지금, 여기에서 증명되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써지고 있다. 이준희, 2025년 5월
MEET ARTIST_MOON BEOM

사진=운중화랑, 이뜰리에에서 문범작가님,
1955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1982년 <토탈갤러리,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1999 국제갤러리,서울>, <2004 PKM갤러리, 서울>, <2010 킴 포스터 갤러리,뉴욕>, <2011 갤러리시몬, 서울>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1976, 앙데팡당,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시작으로 광주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교토시립미술관, 첼시미술관, 선재미술관, 성곡미술관, 크레스기미술관, 타이페이시립미술관 등 총 200여 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습니다. 문범작가는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다양한 실험적 작업을 전개하였으며, 개념과 형식을 갖춘 한국추상회화의 새로운 미학을 정립하였습니다. 작가는 오랫동안 후진양성에 힘써왔던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현대미술학과에서 교수직을 퇴임하고, 현재는 경기도 용인의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Artist Statement
이 작품들은 어떤 대기현상에 관한 담론, 또는 그러한 취향들 속에 잠재해 있는 대부분의 무질서와 약간의 질서 등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의미구분은 전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사소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형화되어 버릴 듯한 모든 불연속적인 시간들 속에서 제각기 움직이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현대미술이란, 깊은 산속 숲속에서 사람들 눈에 발견되지 않고 생겨났다. 사라지는 식물들의 자유롭고 은밀한 생태나, 끊임없는 관찰과 계산에 의해서 세계의 증거물들을 잡아내려는 노력에 관계하고 있는 과학 등과 같은 모습으로 보여지곤 했다. 저 알 수 없는 사물들을 둘러싼 엄청난 자유와 규칙들 속에서 지금의 미술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어떠한 것들일까.
인간은, 미술은 그 이름을 걸고 예전부터 현실적인 것에서부터 이야기의 질서, 의미의 기승전결, 재현의 다양한 결과 등을 흠모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는, 사물들은 미술이 집요하게 던지는 판단과 분류의 촘촘한 그물 사이로 항상 매혹적으로 빠져 나아간다. 이러한 절망과 그때마다 나타나는 유혹들이 나와 현대미술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나의 미술은, 오래전부터 서로 전혀 관계없는 다수의 공간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거나 죽어서 떠도는 영혼들의 날개 짓, 혹은 그 그림자들, 그것의 주름진 교차의 음계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예찬, 절절한 그리움 같은 망설임의 징후들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바닷물이 끊임없이 밀려와 만들어내는 물거품의 유리알만큼이나 눈부신 무질서들 속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또 그것은 어떤 질서와 같이 출발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봐도 소용이 없다. 나는 그곳에 도달하지를 못한다.
글 = 문 범
Art Works
MEET ARTIST_KIM JAENAM

사진=작가, 여수 작업현장에서 김재남작가 님,
1971년 여수 출생으로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주요 활동으로는 GS칼텍스 예울마루, 쉐마미술관, 홍익대현대미술관, 금호미술 관 등 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부산바다미술제-‘Ars Ludens’ 외 100여 회의 그룹전에 참여하였습니다. 김재남은 회화, 영상, 사진, 텍스트 등 매체 간 “상호매체성(intermediality)”의 서사구조를 기반으로 “시적 언어”와 이미지, 장소와 사물 사이의 미묘한 ‘관계와 간극’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불연속적인 바람과 이야기의 질서 같은 우연성과 불확실성의 구조화에 주목한 작업들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에서 작업하고 있으며 건국대학교(서울) 예술디자인대학 현대미술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Artist Statement
‘인간의 눈으로 감각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 철학적 의문에 대하여’
내가 생각하는 그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숭고미와도 같은 수평선을 따라, 내 눈과 태양이 함께 넘어가는 그 감각 너머의 초월적 세계와도 같다. 아주 오래전 어디선가 보았던, 모여들었다가 부서지고, 다시 흩어지는 파도처럼, 혹은 우리 주변을 항상 맴돌지만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불연속적인 바람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나의 예술적 실천으로서 반회화적 회화는, 관념과 현실 사이, 그리고 지금-여기와 과거 사이에서 끊임없는 부딪침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예술이라는 형식의 특수한 물질을 작품으로 보여주거나, 드러내거나, 또 만들어내려 한 것들이 아니다.”
‘단지 기억이자 기록이었는지도 모른다.’
글 = 김재남
Art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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