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형태形態 – 선은 공간을 만들고
Oct 04 – Oct 11, 2024
후원 성남문화재단 |성남시
우리화랑은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이수자' 정재훈 작가님의 개인전을 진행합니다. 정재훈 작가는 우리 전통 목가구가 갖는 정체성을 지키며 동시에 그 기법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고민과 노력을 기울이며 활발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절제된 선과 선이 만나 조형적 공간을 이루는 이 빼어난 작품들이 운중화랑에 찾아옵니다. 우리 산하에서 자란 나무로 빚어진 아름다운 선과 멋드러진 공간 속에는 그윽한 나무향이 숨쉬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성남시와 성남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행사입니다. 우리 화랑은 성남시 운중동에 위치한 화랑으로서 우리 지역의 작가님들의 작품활동을 응원하며 지지합니다.
Artist Statement
한적한 마을 어귀에 있는 정자나무 아래 평상, 고즈넉한 사찰이나 시골집 툇마루, 그러한 공간에서 느끼는 개방감, 평온함 그리고 자유로움을 작품에 담는다. 선은 형태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면서도 사물의 형태와 성질을 완성하는 매개체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체이기도 하다. 또한 선은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은 다시 공간을 만든다. 공간은 태초부터 존재하였지만, 우리는 인위적인 선을 그어 규정짓고 구별 짓는다. 이렇게 선은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현대의 생활공간은 사방이 막혀있는 공간이 주를 이룬다. 그리 오래전이 아닌 우리의 생활공간은 이와는 매우 달랐다. 전통적인 주거 양식에서는 공간은 큰 요소 중 하나였다. 그 공간은 너와 나를 구별하는 공간이 아니라 바람, 비, 그리고 풍경 등 모두를 아우르는 열린 공간이었다. 그 공간 안에 걸려있는 한 폭의 그림에서도 여백 즉, 공간은 그림의 한 요소 이상으로 기능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낮은 가구나 사방이 트여있는 사방탁자와 같은 기물로 우리의 공간은 구성되어 있었다. 공간은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을 가지는데, 이것은 가능성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공간이 열려 있을 때 더욱 확장된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할 가능성, 빛과 바람이 지나갈 가능성 등 이 모든 가능성은 증대된다. 이렇게 여백 즉, 열린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이 가득한 곳’이다. 또한 이러한 가능성은 우리 인간의 원초적인 가능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작품에서 열린 공간은 형태적 그리고 색채적으로 더욱 강조된다. 현대의 도시처럼 많은 선이 오고 가며 공간을 나누며 열린 공간을 에워싼다. 닫힌 공간은 붉은색으로 열린 공간은 검은색으로 때로는 닫힌 공간은 검은색으로 열린 공간은 붉은색으로 색 대비를 부여함으로써 더욱 그 공간은 확장된다. 작품을 표현하는 색은 자연의 색이다. 검은색은 가흑단을 사용하거나 오동나무를 낙동하여 표현한다. 전통 기법인 낙동은 오동나무의 표면을 인두로 지진 후 볏짚 등으로 문질러 연약한 부분은 떨어내고 단단한 부분은 도드라지게 하여 목리를 살리는 기법이다. 그리고 붉은 색감을 띄는 참죽나무나 느티나무를 사용하여 붉은색을 표현한다. 활짝 열려 있는 작으나마 한 공간에 무한한 상상력을 부여하였으면 한다. 글=정재훈, 2024
MEET ARTIST
정재훈 CHAEHUN CHUNG
1970~ 서울생
1995 한양대학교 일반대학원 전자공학과 졸업
2017 문화예술교육사
2016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이수자
2014 문화재수리기능자
개인전
2024 형태形態- 선은 공간을 만들고, 운중화랑, 성남
2023 형태形態-선을 잇다,갤러리밀스튜디오, 서울
2022 형태形態-선을 잇다, 운중화랑, 성남
2022 KCDF 공예디자인 공모전시 개인작가 부분 선정,<형태그리고 색色>, KCDF 갤러리, 서울
2021 정재훈 목가구展 - 새로운 시작(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통공예 명품전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단체전
2023 공工.휴休.일日, 온양민속박물관 구정아트센터, 아산
2023 메종&오브제, 노르빌팽트(Nord Villepinte, Paris) 전시홀, 파리, 프랑스
2023 전통공예명품전,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전시관, 서울 등 10여회 이상 참여
수상
2020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
2018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특선, 전통공예명품전 천공증서 수령
2017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특선
2016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특선
2015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장려, 대한민국미술대전 전통미술 , 공예부문 입선
2014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
2013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장려
작품소장처
국립무형유산원, 서울공예박물관, 국가유산진흥원, 다수의 개인소장
ART WORKS
CRITICISM
나무로 읽는 시대_임대식(평론가)
시대는 세상을 살아가는 경험들의 축적이다. 그 축적된 경험들이 지목했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시대를 대변하게 된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보자면 그 시대에 어떤 물질을 발견, 혹은 발명했고 그것으로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지표를 보여준다. 그 중, 인류가 가장 먼저 사용한 물질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나무였다.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는 있어도 목기 시대는 명명되지 않을 정도로 목재 즉, 나무는 이미 인류의 삶이고 생활이었다. 이렇게 나무는 수 억만년 전부터 지구를 먼저 지키고 있었고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명들과 공생해 왔다. 지구의 모든 생명을 통틀어 숲에서 두발로 걸어나 온 인류의 손에는 나무로 만든 도구가 들려 있었을 것으로 상상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나무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고 편안한 재료였다. 정재훈 작가는 이러한 나무를 가지고 시대와 그 시대를 구성해 왔던 공간을 재해석한다. 특히 그가 만들고 있는 나무 가구들은 그 시대를 대표해 온 철학과 사상들을 지금의 시각으로 해석한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작가는, 예전부터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큰 나무 밑에 있던 평상, 안방과 건넛방을 잇는 툇마루와 같은 여유로운 공간감을 재현할 수 있는 가구의 형태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공간 개념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공간이란 단순히 물리적으로 무엇인가 물체가 존재하는 영역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양한 것들이 만나고 부딪히면서 다양한 경험들이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할 수 있는 가능성, 빛과 바람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가능성 등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가능성이 확장되는 공간이 바로 우리가 살아 왔던 공간이었다. 이는 작가의 가구가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며 표현의 목표다. 작가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열린 공간은 형태와 색채를 통해 보다 체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현대 도시가 만들어 내고 있는 닫힌 공간의 선과 형태들과 달리 열린 공간은 정확한 대칭과 조화를 통한 형태는 오히려 시각적 안정감과 사물에 집중할 수 있는 사고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구성되는 작가의 작품의 색채들은 각각의 의미를 가진다. 즉, 생동과 생명의 발산을 의미하는 붉은색이 삶의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면, 검은색은 그 에너지를 축적하고 관찰할 수 있는 자아성찰 기회의 중요성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확한 대칭의 형태와 색채의 대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공간이 어떻게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그 범위를 좁혀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작가의 가구는 단순히 전통 기법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만들어진 목가구로 보게 된다면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흡사 우리가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의 피곤함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처럼 정재훈 작가의 가구는 가구라고 하는 물리적 카테고리에 가두어 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가구는, 작품에는, 시대의 철학과 사유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발산과 에너지의 축적이 완벽한 대칭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가의 작품에는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렇게 숨이 순환되면서 느낄 수 있는 휴식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느끼고 잠깐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류 최초의 재료였을 나무로 읽은 작가가 바라본 시대의 메시지다. (글. 임대식,=평론가, 2024)
형태 그리고 색_김예성(KCDF갤러리 큐레이터)
전통 목가구의 제작방식으로 작업하는 정재훈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자란 나무를 주로 사용하고, 각 재목의 고유한 색감과 무늬를 적절히 조합한다. 특히, 참죽나무, 오동나무, 느티나무와 같은 바탕 빛에 나무 자체에 수묵화를 풀어 그린 듯한 색과 무늬를 지닌 먹감나무의 대비가 어우러진 책장과 탁자장은 전통가구의 비례에서 오는 우아한 형태에 색과 무늬의 다채로움을 더한다. 그의 작업은 목가구의 전통적 조형미를 계승하면서 동시대 공예작품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작품에서 드러난 조형성은 '선', '색', '여백'의 세 가지 전통적인 미학과 함께 읽을 수 있다. 먼저, 전통적인 ‘선’은 한복, 한옥의 지붕, 처마 등의 전통 건축구조에서 유래한 ‘비(飛)의 선’이나 전통회화와 서예의 획에서 나타나는 ‘자유로운 선’, 그리고 ‘자연의 선’을 예로 든다. 이러한 ‘선'의 미학은 공통적으로 꾸밈이 없는 자연의 담백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작품에서도 절제되고 간결한 선이 드러난다. 두번째로, 전통적인 목가구의 '색'은 주로 ‘자연의 색’을 말한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한 조선 목가구는 인위적인 채색장식이 아닌 자연의 색이 드러나도록 표면 처리에 중점을 두었다. 작가는 전통가구와 같은 좌우대칭의 구조적 비례와 함께 판재의 나뭇결무늬를 대칭으로 구성하며 느티나무의 용목(龍木)과 먹감나무에서 나온 흑색의 자연목리(自然木理)등,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이 만들어낸 색과 무늬를 조화롭게 표현한다. 한편, ‘여백’은 공간과 관련이 있다. 한옥의 건축 공간은 내부와 외부 공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열린 공간’의 특성을 보여주고, ‘비움’을 통해 얻어지는 개방성의 미학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특징은 사방탁자와 같이 뼈대만 남긴 전통 가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이 공간적 여백을 '삼층 책장', '탁자장' 등의 작업에 적용하여 전통과 현대를 잇는 조형어로 활용하고 있다. 전통가구의 비례를 유지한 채, 기능적인 면에서 현대인의 생활에 적합하도록 면 분할된 구조를 일부 차용하여 열린 공간으로 둔다. 이 ‘여백’의 개념은 한국화의 공(空) 혹은 ‘빈 곳(void)’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산수화에서 운무(雲霧)에 가려진 산의 일부는 그려지지 않은 채 남겨지나 그림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가구의 ‘빈 곳’은 물리적으로 비어 있지만, 그 여백은 조형적 의미로 채워져 있고 가구가 위치한 공간과 사물의 관계를 형성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시간이 흘러도 나의 역사로 쌓여 남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디지털 기술의 최첨단 분야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삶의 방식 중 하나인 소목장의 길을 택한 정재훈 작가는 지난 10여 년 동안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 이수자’이자 오늘의 공예가로서 자신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작품세계의 여러 면면을 선보이며 우리 목가구의 역사를 함께 쓰게 될 정재훈 작가의 다음이 기대된다.
전시를 축하하며_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정재훈 소목장은 공대를 나와 이동통신 분야에서 줄곧 연구개발자의 삶을 살다가 이전 업무와는 생경한 목수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처음 시작은 나무가 좋아서도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곧 예전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 싫어 ‘시간이 지나도 조금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남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던 중 우연이 발을 내딛고 그것이 곧 새로운 길이 되었습니다. 벌써 정재훈 소목장과 사제 간으로 인연을 맺은 지 어언 10년이 되었습니다. 첨단을 달리는 IT 분야에서 일하다 나이 사십을 갓 넘겨 늦깎이 목수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였지만,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히려는 열정과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가구의 전통을 이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뿌듯하고 마음 든든하였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겠지만 소목 입문 2년 차에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 처음 출품한 작품이 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매회 꾸준히 출품하여 매번 입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통목가구 회원전 및 전통공예 명품전에도 매년 작품을 출품 전시하는 등 작품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드아카데미를 열어 전통가구를 널리 알리고 저변을 넓히는 교육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정재훈 소목장은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노력과 의지 또한 분명하여 격려를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전통의 미감과 기법을 자양분 삼아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려는 작업 또한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열린 공간과 더불어 선과 면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전통의 비례미가 담긴 작품들은 많은 고민과 노력의 산물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로서의 전통의 계승과 발전의 명제 앞에 열리는 개인전을 앞두고 보니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궁금해지고, 고대하게 됩니다. 정재훈 소목장이 여러분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더욱 정진하는 장인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글=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