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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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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에서 각계의 사람들이 모여 예술과 문학을 나누던 사교 집회를 뜻하는 ‘살롱(salon)’

운중화랑은 미술사 및 현대미술 강의,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미술을 사랑하시는 분들과 함께 만드는 소통의 장이 되고자 합니다.

개강 / 상반기 3월, 하반기 9월/  2째 화요일 

휴강 / 1,2,7,8 월

 

수업일_ 학기별 12회 /매월 2,3,4,주차 화요일

정원 10명(수시 모집)  T. 031-703-2155

 


 

강의 내용 - 2025 가을학기

전임 강사 :이준희

학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과정수료

경력: 前 『월간미술』편집장, 現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

           홍익대 초빙교수, 경희대 덕성여대, 서울시립대 출강

1강 :오리엔테이션 

- 상호인사, 관심사 공유

- 강의내용 소개 및 조율

-살롱에서 미술공부하는 이유는?

-미술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나기

2강 : 서구 미술/문화의 중심 이동 - 유럽대륙에서 미국(맨해튼)으로

-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

- 제국주의 종말과 탈식민주의 대두

- 전후 유럽미술 ex)앵포르멜

- 작가 : 장 포트리에, 장 뒤 뷔페, 쟈코메티, 베르나르 뷔페, 안토니 타피에스, 이브 클랭, 페에르 슐라즈, 카렐 아펠

3강 : 1950년대 냉전시대와 본격적인 미국 현대미술

- 클레멘트 그린버그 형식주의 모더니즘과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무엇이 예술인가?”

    ex) 잭슨 폴록 & 추상표현주의, 도널드 저드 & 미니멀리즘

- 초강대국 미국 자본주의와 대중문화 ex) 앤디 워홀 & 팝아트

- 작가들 : 헬렌 프랭켄텔러, 모리스 루이스, 케네스 놀란드, 엘즈워즈 켈리, 프랭크 스텔라, 아쉴 고르키, 필립 거스턴, 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로버트 머더웰, 싸이 톰블리,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애드 라인하르트, 리처드 헤밀턴, 재스퍼 존스, 라우센버그, 클래스 올덴버그, 로이 리히텐슈타인, 데이비드 호크니, 지그마르 폴케

 

4강 : 동시다발, 종횡무진, 다원주의 현대미술

- 개념미술, 대지미술, 신체미술, 퍼포먼스, 옵아트, 키네틱, 하이퍼리얼리즘, 페미니즘, 신표현주의 …

- 작가들 : 브릿지 라일리, 빅토르 바자렐리, 헤수스 라파엘 소토, 야코프 아감, 루치오 폰타나, 토니 스미스, 로버트 모리스, 칼 안드레, 댄 플래빈, 에바 헤세, 리처드 세라, 솔 르윗, 리처드 롱, 크리스토, 로만 오팔카, 요셉보이스, 피에로 만초니, 온 카와라, 조셉 코수스, 다니엘 뷰렌, 한스 하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5강 : 유럽 68혁명과 구조주의 & 미국 포스트 모더니즘

- 소쉬르의 언어학 이후 프랑스 현대철학(푸코, 데리다, 들뢰즈) & 프레드릭 제임슨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

- 지구인 백남준과 비디오 아트, 무빙이미지 - 색에서 빛으로,

- 비물질적 세계관과 21세기 미술의 초월론적 경향들

- 인터넷과 아이폰, 디지털 유목시대 시각이미지 변천사

6강 : 포스트 휴먼 시대, 물질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사유

- 빅 히스토리와 인류의 운명,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 생태와 환경에 대한 화두, ‘인류세’

- 동시대 미술 최전선 ex) 신유물론 - 몸, 지구, 생명 등에 대한 미술작가의 관심과 사례

7강 : 1945년 해방, 2025년 광복 80년 개괄

-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연보와 한국미술사 비교

- 불완전한 근대의 서막

- 근대의 기점 설정 ; 조선말기~1910년, 1910~1945년, 1945~1960년

- 작가들 ex) 휴버트 보스, 심전 안중식, 소림 조석진, 춘곡 고희동, 김관호, 나혜석, 구본웅, 김인승, 심형구, 이인성, 오지호,

   김주경, 이쾌대

8강 : 전쟁과 분단

​- 부산 피난 시절 : 변관식, 김세중, 서세옥, 박노수,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 월남 작가 : 이중섭, 이병기, 한묵, 장리석, 최영림, 윤중식

- 월북 작가 : 이쾌대, 이여성, 정종여, 근원 김용준

-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현대미협) 김창열, 하인두, 박서보, 정상화(1930년대 생)

- 1959년 박서보, 김창열 「제1 선언」 - 反국전 레토릭

- 유럽 앵포르멜과 미국 추상표현주의 영향

- ‘60년 미술가 협회’ (윤명로, 김봉태, 김종학) = 덕수궁 <벽전>

9강 : 1960~1970년대, 회화 外 다양한 경향들

- 1960년대 이후 하드에지의 기하학적 추상, 오브제 미술, 작가의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미술’ 등장(고급미술의 신비에서 탈피, 미술의 개념자체를 바꾸고자 시도, 세계적으로 유행한 옵아트와 기학적 추상 영향)

1962 <무동인>(zero group)

1963 <오리진> 그룹 - 최명영, 서승원, 이승조, 김홍석

1967 <청년작가연립전>(<무동인> + <신전> + <오리진>) : 행위미술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오광수), 비닐우산(산업사회, 물질) + 촛불(정신, 저항)

1968 ‘에저또’ - 최초의 언더그라운드 실험극단

- 행위미술

1968 <색비닐의 향연> = 강국진, 정찬승(이브 클랭이 누드 해프닝을 우리도 해보자 정찬승이 제안, 정강자가 나섬)

1968 <제4집단>(세시봉) : 정찬승, 정강자 <투명풍선과 누드>, 김구림, 강국진, 최붕현

1968. 10.17 <한강변의 타살>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1970 8.15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 =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 AG / ST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1969~1975) : 김차섭, 김구림, 곽훈, 김한, 서승원, 이승조, 이강소, 이건용, 최명영, 하종현, 박석원, 박종배, 송번수(이일, 오광수)

ST(Space Time, 1971) : 김용익, 김장섭, 김홍주, 성능경, 신성희, 윤진섭, 장석원

10강 : 1980년대 모더니즘(단색화) vs 민중미술

- 단색화, 모노크롬, 단색조, 단색회화 용어 혼용. <한국의 단색화>(국현. 2012)

- 1960년대 후반, 탈(脫)이지미와 평면성을 강조

- 작가들 : 허황, 이동엽, 김환기, 권영우, 김기린, 정상화, 정창섭, 윤형근, 하종현, 윤명로

-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전> (동경화랑, 1975) 박서보, 허황, 권영우, 서승원, 이동엽

- 민중미술은 ‘미술운동’이자 ‘민중 문화운동’

- ‘민중民衆’이라는 용어는 ‘대중’ 또는 ‘민족’이라는 용어보다 계급적.

- 민중 문화운동은 1960~70년대, 서구 문화의 추종에서 벗어나 고유한 민족문화를 추구한 문학 분야에서 먼저 시작 ex)김지하(1941~), 신경림(1936~), 조세희(1942~), 황석영(1943~), 박노해(1957~)

-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아랍문화원)을 계기로 ‘민중미술’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짐. (정부에서 먼저 사용)

- 민중미술 본격적인 시초는 1979년 12월 결성된 그룹 ‘현실과 발언‘

- 10년 전, 1969년 10월 결성된 ‘현실 동인‘(오윤(1946~1986), 임세택, 오경환), <현실동인 제1선언> 발표 (김윤수, 김지하가 작성)

- ‘현실과 발언’ 창립 멤버 : 김정헌, 오윤, 손장섭, 김경인, 주재환, 오수환, 심정수, 김용태, 윤범모, 원동석, 성완경, 최민, 임옥상, 신경호, 민정기, 신학철, 강요배

- 제1회 현실과 발언 : 1980년 10월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1월 13일~19일 동산방 화랑

 

11강 : 1990년대 신세대 미술과 소그룹 운동 &

밀레니엄 이후, 글로벌 문화 환경과 K-컬쳐 까지

- 『90년대 한국미술관 포스트 모더니즘 : 동시대 미술의 기원을 찾아서』 (문혜진, 현실문화)

- 『이미지 시대의 매체vs미디어 : 민중미술, (포스트)모더니즘, 신세대 미술의 예술적 실천들』

(기혜경, 현실문화)

 

12강 : 총정리 마무리

- 미술과 함께하는 (예술적) 삶의 방식과 태도

- 일상에서 소소하게 미술을 실천하는 방법 등에 관한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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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선생님과 떠나는운중아카데미MT

강의 내용 - 2025 봄학기

전임 강사 :김정락

서울대 미대(서양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미술사학(철학박사)

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 외 15개 대학에서 강의, 서울여대 및 인천가톨릭대 겸임교수 및 초빙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전)교수,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크라운 제과(사외이사)

저서 및 논문: 미술의 불복종, 코리아 디아스포라 외 12권, 학술논문 21편

 

제 1강. 낭만주의: 혁명시대의 예술

 

18세기말부터 그 조짐을 보여준 낭만주의(romanticism)는 산업혁명과 정치혁명(프랑스대혁명)의 후유증과 같은 문화의 병리적 현상이라 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까지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의 후신인 아카데미즘과 함께 유럽 미술의 지배적인 사조였다. 소설(roman)과 의미론적 연관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회의와 사회적 혼란상 그리고 미술사적으로 고전주의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서 불거진 사조가 낭만주의다. 음악이나 문학사의 전개처럼 미술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합리성보다는 열정이나 파토스에서 예술의 정서를 찾았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결정적 사건은 나폴레옹의 등장이었고, 그는 영웅에서 공공의 적으로 급변하면서 유럽 사회는 반동과 혁신 사이에서 좌충우돌하게 되었다. 민족주의가 등장하여 문화와 역사의 자주성 등이 여러 분야의 예술에서 드러났고, 이를 통해 근대를 향한 새로운 추진력을 세웠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2. 사실주의: 유물론적 예술개념의 탄생

 

사실주의는 19세기 초중반에 등장했던 새로운 세계관과 관련이 있다. 실증주의와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우리에게 실증주의로 번역되는 이 이념은 사실상 유물론에 입각한 철학이자 세계관이었다. 콩트에서 마르크스까지 유물론에 기반 한 (혁명적) 철학은 영국의 경험주의를 토대로 삼아 산업사회가 낳은 사유체계였다.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쿠르베가 “천사는 그리지 않는다. 그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일갈한 것은 바로 이 유물론적 시각 때문이었다. 사실주의가 과거의 자연주의와 다른 점은 자연주의가 없는 것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면, 사실주의는 화가의 눈에 보이는 것만 그렸다는 점이고, 그것에 대한 집중된 시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나아가 쿠르베는 나는 사실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자라고 선언했던 것도 의미심장하다.

 

사실주의의 폭은 넓었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 컨스터블이나 터너가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에서는 카미유 코로, 클로드 베르네 등이 나타나 사실적인 전원풍경을 그렸고, 이들은 이후 퐁텐블로 화파와 바르비종 화파에 영향을 미쳤다. 프랑수아 밀레가 해당되는 화가다. 이들은 화거와 달리 전원적 삶의 사실성을 추구했고, 나아가 자연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토대로 사실적인 풍경화를 그려냈다.

3. 아카데미즘과 상징주의(Symbolism)

 

아카데미즘은 특정한 시기의 사조라 보기 어렵지만, 17세기부터 (왕립)미술학교와 연례적인 국가공모전(살롱전시회)이 출현한 이후 20세기까지 이어온 미술의 제도라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그리고 규범에 관한 이념적 추구로 인하여 아카데미즘은 (신)고전주의의 연장선에 있으며, 유럽에서는 적어도 미술의 주도적 위치를 오래 동안 점했다. 특히 자크 루이 다비드에서부터 앵그르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아카데미즘은 현대미술이 등장하기 전에 막강한 권위와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19세기에 아카데미즘은 여러 경쟁적인 사조와 양식으로 인해 도전을 받았다. 첫 도전자는 낭만주의였고, 다음으로는 사실주의였다. 외에도 상징주의가 그 명맥을 이었다. 인상주의가 나타나기 전부터 상징주의 낭만주의의 전통 속에서 정신과 관념의 세계를 탐구하였다. 특징이라면 과거 중세(혹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신비로운 서사를 제재로 삼았고, 초현실주의를 예상하게 만드는 여러 매혹적인 미술세계를 형성하였다. 상징주의는 클림트와 뭉크와 같은 화가들을 만나서 현대성이 농후한 미술사조로 발전하게 되었다.

4. 인상주의(impressionism)

 

현대미술의 출발점이 된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사조다. 프랑스, 특히 파리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기존 제도적인 미술유파에 대한 저항과 대안적 모색으로 시작된 인상주의는 프랑수아 밀레 등이 포함된 바르비종 화파와 영국의 18세기 초반의 경험주의에 의거한 풍경화에 - 특히 컨스터블과 터너 - 영향 하에서 생겨났다. 선구자는 에두아르 마네이지만, 특정한 리더나 구심점이 없고, 개인적 스타일들의 총합으로서 사조를 형성하였다.

 

인상주의 회화의 특징은 뚜렷한 붓질 자국, 과감한 원색의 활용, 일상적인 주제 그리고 아틀리에를 벗어난 즉흥적인 작법 등이다. 특히 빛에 대한 민감한 반응과 재현 그리고 대상을 색으로 인지하는 말 그대로의 인상적 수용이 사조가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당대에는 ‘미완성’의 회화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후 모방적 회화의 해체로 가는 현대회화의 출발점으로서의 의의를 갖추었다. 1874년에 첫 공식적인 전시를 열었고, 이때 비평가였던 루이 르로와(Louis Leroy)가 "인상적이야(impressive)!"라고 외친 언급이 사조의 이름을 결정하게 되었다.

5. 후기 인상주의: 고흐, 고갱, 세잔, 쇠라 등

대략 1886년부터 등장했던 신사조로서 후기 인상주의는 이전 인상주의가 추구했던 모방적 양태를 지양하고, 새로운 미적 취향과 개성적 스타일을 구축하려고 하였다. 세잔, 고흐 그리고 고갱으로 대표되는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가 형성한 토대 위에서 보다 근원적인 원리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세잔은 근원적인 형태로 소급되는 형상성을 추구했고, 고흐는 물결치는 붓질에서 생동감을 부여하였고, 고갱은 이국적인 풍경과 인물 속에서 새로운 미학을 구축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후기 인상주의란 범주 아래서 쇠라 등에 이한 점묘파가, 세잔에 의해 초기 입체파가 조짐을 보였고, 고흐는 현대적인 표현주의 미술의 길을 열었으며, 고갱과 루소 등은 원시주의(primitivism)이란 불러왔다. 이 원시주의는 표현주의의 한 지류인 야수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후기 인상주의는 본격적으로 현대미술의 큰 맥락들을 마련해주었던 사조라고 할 수 있다.

6. 상징주의: 나비스와 분리파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가 미술사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19세기에서 20세기로 현대미술을 이어준 매개체는 오히려 상징주의다. 나비스와 분리파는 큰 맥락에서 상징주의에 해당한다. 또한 인상주의가 프랑스에 한정되었다면, 상징주의는 전 유럽적인 차원의 현상이다. 나비스(Nabis: 히브리어로 예언자)도 아카데미 줄리앙(파리) 출신들이 핵심이 된 그룹으로 보나르, 뷔야, 루쎌, 발로통, 세루지에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알퐁소 무하(체코)도 이들에게 큰 영향을 받아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이들은 현실을 꿈을 꾸는 듯이 부드러운 색감과 평면적인 화면 분할 그리고 파격적인 구도로 재현하였는데, 특히 채색에 있어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주제 또한 은유와 상징의 합성물로서 당대의 신비주의나 그노시스의 사상과의 접목도 괄목할 만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분리파가 등장하여 과거의 제도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데카당스에 즈음한 화풍들은 사실성을 기반으로 형식적으로는 각자의 표현성을 강조하고, 추상적 형태들을 과감히 도입함으로서 혁신을 추구하였다. 오스트리아의 클림트와 실레의 작품들 그리고 독일에서는 한스 토마와 뵈클린 등이 형성한 신비로운 풍경이나 인물화 등은 프랑스의 낙천성과 대비되는 비애성이 강조되는 상징주의를 보여준다.

7. 미술관 현장전시투어(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_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론뮤익 /덕수궁관_한국초현실주의와 근대미술)

8. 입체파(Cubism): 세잔에서 피카소까지

 

입체파는 1910년대 미술의 전환점을 찍은 매우 의미 있는 사조(운동)이다. 1907년 피카소가 <아비뇽의 여인들>을 전시함으로서 입체파의 원년이자 출발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브라크가 먼저 시작한 회화 형식이라 정의된다. 입체파는 세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서 대상이 되는 사물과 자연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며, 상응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재현한다. 과거 창으로 인식되었던 화면으로서의 회화라는 개념을 해체한 첫 사례라고 한다. 이로서 르네상스 이후로 확고한 원리가 되었던 원근법적 재현을 극복하고 회화의 차원을 재정립한 사조가 되었다.

 

피카소, 브라크, 레제 호앙 그리 등등이 입체파를 전개했다. 입체파는 콜라주, 몽타주 그리고 아셈블라주 등 다양한 기법을 동반한 다양한 표현방식을 불러왔다. 이로서 회화의 화면은 좀 더 평면적 세계로 가까워졌으며, 동시에 영화의 작법과도 상호작용하였다. 입체파가 마련한 새로운 회화는 이후 오르피즘이나 표현주의 등 회화뿐만 아니라, 바우하우스, 데 스틸 그리고 팝아트와 옵아트 그리고 단색회화 등까지 영향을 미쳤다.

9.  절대주의-다다-미래주의

 

20세기 초 미술은 온갖 혁명에 몸부림을 쳤다. 입체파는 그 중에서도 얌전한 편에 속한다. 러시아에서는 절대주의(Suprematism)가, 이탈리아에선 미래주의(Futurism), 프랑스와 스위스(취리히)에선 다다이즘(Dadaism)이 장문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혁명에 참전하였다.

 

절대주의를 표방한 러시안 출신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추상을 유물론적 토대 위에서 구축하였다. 그것은 토목공학자나 물리학자들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과거의 모방론에 대항하여 새로운 유토피아를 구축하고 싶었고, 그 시금석은 철저한 이성적 논리와 인공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 신념은 한 예술가로부터 나왔다. 카지미르 말레비치였다. 그의 추상은 자연과의 결별이고, 신이 창조한 세계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나아가 구체제가 만든 예술에 대항하는 것었다.

 

이런 저항의식은 다다이즘과 미래주의도 공유하는 것이었다. 자동기술법이나 추상적 양태 그리고 미래사회에 대한 구상들은 모두 이런 의식에서 유발된 것이다.

10. 초현실주의(Surrealism)

 

초현실주의는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주류를 이루었던 미술사조다. 현대사회는 진보와 발전이라는 긍정적 측면의 반대 면을 바라본 사조가 초현실주의다.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호앙 미로, 막스 에른스트 등등이 여기에 포함되는 사실상 전 유럽적 미술사조였다. 최초는 앙드레 브르통의 선언문을 기초로 이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예술세계를 연 것이 초현실주의였다.

 

초현실주의는 꿈, 무의식 등 이성과 합리적 논리성 저 너머에 도사린 궁극적인 인간의 정서와 욕망을 그려내는 일에 천착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다다이즘이 개발한 자동기술법이나 프로타주와 몽타주 등을 활용하였다. 이와 함께 비논리적 전개와 양가성을 극대화한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을 시도하였는데, 이를 통해 현실과 꿈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기존의 형상적 관습이나 관계성을 해체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초현실주의는 오늘날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추상과 구상을 가리지 않고 적지 않은 현대미술이 초현실주의의 위험한 유희를 추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1. 표현주의(Expressionism): 독일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표현주의는 따로 유파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현대미술에 있어서 큰 맥락과 축을 형성하는 형식이라 하겠다. 사실상 세잔이나 고흐를 표현주의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나 독일의 신표현주의 미술까지 20세기 말까지도 그 영향을 지속하고 있다. 표현주의는 화법에 있어 거칠고 빠르고 즉흥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색조에서도 강렬한 대비와 원색의 과감한 활용 그리고 내용 면에서도 제도나 문명화 이전의 정서와 본능을 재현하였다. 그리하여 원시주의(primitivism)과의 연계성이 강조된다.

 

20세기 초에 여러 운동과 유파로 활동을 펼쳤는데, 프랑스에서는 야수파(fauvism)가 독일에서는 다리파(Brücke)와 청기사파(Der blaue Reiter)가 뮌헨과 베를린에서 등장하여 초기 표현주의를 펼쳤다. 외에도 표현주의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케테 콜비츠나 에밀 놀데, 에드바르드 뭉크 등도 표현주의적인 형식으로 그렸다. 당시 화가들은 사회와 개인의 불안과 부조리 혹은 억눌렸던 감정을 그려냈고, 이들의 형식은 앞으로 추상미술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12. 추상미술(abstract art)

 

추상미술은 현대미술이 전개한 독특한 조형방식이다. 과거 모방 혹은 사생에 근거했던 미술에서 벗어나 순수한 조형원리만으로 미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추상적인 표현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장식과 기호 등은 사실상 모두 추상이다. 하지만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추상은 현대에 와서 이루어졌다.

 

추상은 우리에게는 비구상(非具像)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재현이 아닌 심상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본다. 색과 비재현적 형상 그리고 구성(composition)에 집중한 미술은 보다 더 심리적인 자극을 불러왔고, 이를 통해 서사성을 넘어서 원초적인 감정이입에 천착함으로서 근원에 대한 추구를 목적으로 삼았다.

 

칸딘스키는 최초의 추상미술가이면서, 동시에 추상미술의 원리를 세운 인물이다. 이후 추상을 지향하는 미술은 뜨거운/차가운 추상이란 두 맥락으로 전개되었다. 감정을 중요시한 뜨거운 추상은 이후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로 유파를 형성해 나갔고, 이성적인 양태를 띤 차가운 추상은 바우하우스와 데스틸을 거쳐서 기하학적 추상, 색면추상, 옵아트 등으로 발전하였다.

강의 내용 - 2024 가을학기

전임 강사 :이준희

학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과정수료

경력: 前 『월간미술』편집장, 現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

           홍익대 초빙교수, 경희대 덕성여대, 서울시립대 출강

1강 :오리엔테이션 

- 상호인사 & 소개

- 강의 스케줄 및 내용 소개

 

2강 :비엔날레를 아시나요? 

- 9월 7일, 1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

- 베니스비엔날레 & 그랜드 아트 투어

 

3강 :도대체” 미술이란 무엇인가? 

- 용어와 개념, 시대에 대한 이해

- 미술을 정의하는 두 개의 키워드

4강 :현대미술 이해를 위한 선행학습 

- 근대 혹은 모더니즘이란?

- 순수예술(Fine Art)의 탄생

- 자본주의와 미술

 

5강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서양미술사 1 

- 서양(유럽)/백인/남성의 역사

- 연대기적 시대구분(고대/근대/현대)에서 근대이전 & 근대이후로

- 고대 그리스 & 로마 = 신화와 철학

6강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서양미술사 2 

- 다시 주목하는 중세 1000년!! = 종교의 이름으로

- 고딕(Gothic art)

- 우리가 모르는 이슬람!!

7강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서양미술사 4 

- 바로크 & 로코코

-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시녀들)>

 

8강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서양미술사 5 

-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그리고 산업혁명

 

9강 :마르셀 뒤샹 이전과 이후 

- 1945년, 유럽에서 미국으로

- 앤디워홀과 팝아트, 대중문화

- 미니멀리즘, 미국식 형식주의(모더니즘) 미술

10강 :백남준과 비디오 아트, 색에서 빛으로, 디지털-비물질, 무빙 이미지

- 인터넷과 아이폰, 새로운 시공간 개념들

- 미술에서 문화로

 

11강 :프랑스현대철학과 미술-문화의 새로운경향들 

- Post 혹은 New 

- (후기) 구조주의 

- 신유물론

 

12강 :동시대미술의 최전선

- 빅 히스토리와 인류의 운명   

-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 생태와 환경, 인류세  - 양자물리학

강의 내용 - 2024 봄학기

전임 강사 :김정락

서울대 미대(서양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미술사학(철학박사)

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 외 15개 대학에서 강의, 서울여대 및 인천가톨릭대 겸임교수 및 초빙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전)교수,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크라운 제과(사외이사)

저서 및 논문: 미술의 불복종, 코리아 디아스포라 외 12권, 학술논문 21편

 

<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 이전까지 >

15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서양미술은 과거와는 달리 가파른 속도로 발전한다. 주목되는 현상은 미술의 세속화다. 중세 동안 종교에 귀속되었던 미술은 사적인 취미와 욕망에 부응하였다. 취미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어서 유행과 사조를 동반했다. 미술시장의 형성도 이런 현상이 시너지로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장르(형식)의 다양화가 이루어지면서, 오늘날 다양한 미술이 가능한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1강: 르네상스의 전조 혹은 피렌체의 봄

르네상스 이후 근세미술은 다양한 맥락에서 그 지평을 넓혀갔다. 과학(수학)과 문학이 미술과 연관을 맺었고, 또한 미술은 정치사회적인 영역에서도 의미와 가치를 형성하였다. 이와 함께 기술적인 발전도 가속화되었다.

 

2강: 인본주의와 과학혁명 그리고 미술의 학문화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다빈치, 뒤러 등

르네상스가 가져온 혁명은 미술(시각문화)에 현실성과 현실과의 밀접한 관계성이었다. 신본주의 시대(중세)에 관념적으로 멀었던 미술 속 세계를 현실과의 연관성으로 본다는 새로운 조형의식은 원근법(과학주의) 등의 자연과학과 인본주의(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시각)에 동반한 현상이었다. 미술형식의 변화(유화의 등장)와 새로운 후원자의 등장 그리고 체계적인 미술교육 및 전시제도가 르네상스 미술을 만들어냈다.

 

3강: 전성기 르네상스와 바티칸 내의 경쟁자들

         브라만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최전성기 르네상스를 구가했던 로마의 미술은 정치적으로도 유럽의 구심을 이루는 곳이었다. 예술가들도 정치적인 격랑 속에서 명멸하였고, 미술도 정치적 격랑을 암시하였다. 고대(고전)의 부활은 인본주의와 결합하면서, 다양한 표현적 실험과 결과를 만들어냈다. 미술은 현상의 외피만이 아니라, 그것의 근원까지 파고들어가는 과학적이며 또한 인문학적(철학)인 행위가 되었다. 기술적 차원에서 학술적 수준에 이르면서 '디제뇨(Disegno)'라는 개념도 낳았다.   

 

4강: 중세의 가을: 북유럽의 르네상스 

얀 반 아이크부터 알브레히트 뒤러까지

북유럽의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와 다른 원천에서 출발하였다. 신학에 근본을 둔 인본주의의 생성과 이에 따른 미술의 작용이다. 그래서 중세(고딕시기)에 발전된 극사실적 재현과 상징적인 표현력이 공존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한자동맹이나 길드조직을 통해 미술은 기술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남부의 르네상스를 넘어서는 진보된 조형의식을 갖추었다. 유화의 탄생과 개인에 대한 사상은 바로 사회적 변화에 따른 시너지였다. 북유럽의 르네상스는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진화론적이며, 동시에 매우 사회적인 양상을 띠었다.  

 

5강: 매너리즘 혹은 포스트-르네상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사이에 '매너리즘(Mannerism)'이란 사조가 존재했다. 바로크도 아니고 르네상스와도 다르지만, 독보적인 양식사라 보기엔 간헐적이고 우발적이었다. 그러나 그 확산은 전 유럽을 관통하는 양식이다. 르네상스가 마련한 고전적 형상문법을 화려하고 복잡하게 전개시키면서, 매너리즘은 다양한 예술적 혹은 감각적 실험을 감행하였다. 이성적인 르네상스에 비하면 감성의 요소가 더 강했다. 궁정(세속)의 감성과 결합하면서, 공감각적 효과나 작용에 천착하였으며 유희적인 양태를 펼쳤던 미술의 역사로 정의할 수 있다.

 

6강: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바로크: 고전주의와 바로크의 대결

바로크 미술은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갈등 속에서 확산된 유럽의 미술양식이다. 바로크의 특징은 예술의 세속화에 있으며, 이런 기조 위에서 운동성과 극장성이 강조되었다. 과거 성극장(Theatrum Sacrum)이 세속극장(Theatrum Mundi)로 이전하면서, 오늘날 미술개념에 가까운 형식과 의식이 조성되었다. 그 규범을 이룬 것은 르네상스에 기반 한 고전주의지만, 바로크는 반고전주의적 태도도 동시에 형성시켰다. 또한 미술의 장르별 전문화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미술교육의 체계도 형성해 나갔다. 바로크는 현재까지도 유럽의 외관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사조가 되었다. 

 

7강: 네덜란드의 황금기: 프란츠 할스부터 베르메르까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이어서 해양국가로 성장한 네덜란드는 경제적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와 더불어 미술에서도 혁혁한 발전을 이루었다. 특유의 사실주의와 실용주의가 결합된 네덜란드 회화는 시민적 취미에 상응하면서 다양한 장르를 개척하고, 자유로운 미술시장을 펼쳤다.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그리고 베르메르로 이어지는 거장들의 등장은 그 풍요로움과 다채로움을 선사하였다. 나아가 전통적인 회화술에 있어서 정점을 찍었고, 오감을 자극하는 미시적인 재현은 어느 시대도 누리지 못한 시각적 호사였다.

 

8강: 로코코와 우아한 살롱미술

18세기 초중반을 지배한 양식을 로코코(rococo)라고 하며, 이 용어는 프랑스에서 조개무늬를 의미하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유래했다. 합리적이고 질서를 중시하는 바로크까지의 전통에 비하여 로카이유는 자연스럽고 불확정적인 변화를 애호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개념은 장식뿐만 아니라, 건축의 공간성에도 확장되어서 다양한 변종을 불러왔다. 회화나 조각에 있어서도 풍속화나 서정적인 주제들이 선호되었다. 그래서 바로크의 ‘위대한 양식’은 경쾌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전환되었고, 그런 미각을 형성했던 본거지는 살롱(salon)이었다. 도시 내 저택인 레지던스나 호텔 내의 응접실 혹은 라운지에 해당하는 살롱은 사적이면서도 사교공간으로 활용되었고, 여기서 로코코 문화가 싹트고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살롱문학, 살롱음악 그리고 살롱미술들이 대거 탄생하였고, 이런 것들이 로코코의 예술현상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9강: 신고전주의: 오래된 미래를 찾다.

신고전주의는 고대와 밀접한 연관성 속에서 자라난 새로운 양식이자 경향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고전주의를 수정하고 보다 원리주의적인 행태로 발전시켜 나갔다. 18세기 중반부터, 계몽주의의 역사관 속에서, 신고전주의는 바로크와 로코코의 과도한 장식성이나 비윤리적인 조형의식에 새로운 질서와 윤리적인 취미를 부여하려는 지식계층들의 문화프로그램이었다. 나아가 신고전주의는 미학이나 고고학 그리고 미술사의 탄생과 발전에 힘입어 보다 체계적인 미술에 대한 연구를 이끌어냈으며, 정치사적으로도 지식관료의 미적 감수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이슈로 나타났다.

10강: 혁명과 미술: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사실상 고전주의의 의붓형제라 할 만큼 공존하면서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 예술현상이었다. 경계는 복고적(보수적) 태도를 견지했던 신고전주의보다는 진보적인 태도를 취한 것도 낭만주의의 특징이다. 이 사조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나폴레옹의 등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특히 체제간의 갈등으로 격해진 사회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열정과 정념을 예술의 화력으로 삼았던 것이 낭만주의다. 낭만주의는 이후 여러 신 사조를 열어갈 최초의 문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11강: 사실주의와 비더마이어 그리고 라파엘전파

12강: 아카데미즘 미술

강의 내용 - 2023  가을학기

전임 강사  : 김정락

서울대 미대(서양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미술사학(철학박사)

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 외 15개 대학에서 강의, 서울여대 및 인천가톨릭대 겸임교수 및 초빙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전)교수,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크라운 제과(사외이사)

저서 및 논문: 미술의 불복종, 코리아 디아스포라 외 12권, 학술논문 21편

 

< 고대부터 근세 까지 >

 

1강. 흔적을 남기는 인간 (선사시대 미술)

 인류의 역사는 흔적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런 연구를 위한 학문이 고고학 이나 인류학이다. 고고학은 흔적을 발굴하고, 그것을 토대로 글로 전하지 못 하는 삶과 의식을 복원하는 연구 방식이다. 그렇게 발굴되고 복원된 문명 이전의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는 자연관과 조형관은 마치 유전자처럼 인류의 의식 속 에 뿌리를 내려 현대사회까지 지속되고 있다.

원시와 초기문명의 흔적 중에서 미술로 분류되는 여러 조형물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 공포감 그리고 생존을 위한 다양한 의식들이 녹아 있다. 또한 현 대미술에서도 논의 가능한 다양한 의제와 담론도 포함 되어있다.

2강. 문명의 양끝에서 만나는 미술 (원시미술과 현대미술)

현대미술은 문명의 최고수준에 이른(?) 시점에서 잃어버린 원초적 감성을 찾는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입체파, 야수파, 표현주의 등등에서 등장하는 반 근대적 혹은 반문명적 형상화들은 헬레니즘 이래의 서구전통에 지쳤던 그리고 그 한계에 봉착했던 현대미술의 도전이었다.

원시주의(primitivism)은 ‘순수성’의 회복이란 목적 외에도, 인간 본연의 감성 과 감정 그리고 창작의 자유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모더니즘에 개입 되었던 미개미술은 원시미술의 본질을 지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각종 제의적 형 상들이나 (벽사)가면 등이 현대미술, 이를테면 피카소나 야수파 화가들에 의해 부활되었고, 표현주의의 조형적 근간을 이루었다. 20세기 초반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원시미술에 몰입하여 현대적인 번안을 이루었다. 사실상 추상 미술 이나 액션페인팅(추상표현주의)까지 원시 및 미개미술의 영향력은 지속되었다.

3강 신(들)의 탄생 (수메르와 이집트 미술)

고대의 문명은 부족국가에 해당하는 큰 공동체에 의해 유지되었고, 공동체의 이념을 만든 것은 신화였다. 즉 신들의 이야기는 창조와 창건을 설명하고, 이념(신념)을 통합시키는 이데올로기였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나 이집트의 신화는 신뿐만 아니라, 특권적 계층의 지배를 합리화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바라본 우주, 세계, 자연을 설명하는 원리이자 근거가 되었다. 나아가 삶과 죽음을 초월하며, 다양한 권능을 가진 신화적 존재들이 탄생하면서 인간은 거대한 문명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찾았다.

초기의 신정체제나 제사장-왕의 탄생은 거의 모든 초기문명에서 공통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의 형상화를 이루면서, 문명시대의 예술을 만들어갔다. 다양한 신전건축은 물론 피라미드를 비롯한 장례건축 그리고 이를 장식하는 여러 장르의 예술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4강: 신화가 들려주는 세계 (그리스 미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그리고 여러 서사들을 통해 전해지는 그리스의 신화와 역사는 문명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과거 문명과의 차이는 신과 인간의 엄격한 구분과 비인간화를 극복하고, 인본주의적 태도와 의식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인본주의는 이후 민주주의 등 다양한 진보적인 체제와 사상이 등장하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스의 신화는 적어도 3 세대로 분류되는 신들의 역사를 보여준다. 가이아로 상징되는 최초의 자연신들로부터 우라노스나 크로노스와 같은 거인족(신들의 아버지들)이 2세대를 이루었고, 다시금 이들로부터 올림포스의 신들이 탄생했다.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헤라 등이 자식들을 낳아서 아폴로, 아테네, 아르테미스 등등이 등장했다. 이 신들은 자연신의 권능과 더불어 인간의 역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관계성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문학과 미술은 이러한 신들의 개별적 형상은 물론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들을 재현하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기원전 8세기 즈음에 틀을 갖춘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서사다. 신과 인간들의 운명이 트로이전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양상 속에서 서사는 역사상 최초로 인간에 대한 탐구와 사유를 펼친다. 이렇게 발전시켜나간 그리스의 인본주의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democracy)와 문화적으로는 고전(classic)을 형성하여 서구문화의 초석을 다졌다.

신화는 문명 이전의 역사를 은유한 것이지만, 세계관과 인간관을 담고 있다. 그리스의 신화는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을 함유하고 있는 고차원적인 문화적 산물이다. 이것을 자양분으로 문학과 미술 등 다양한 예술이 자라났고, 거기에 형식적인 기술과 정서적인 함양이 동시에 이루어져 고전이란 준거를 만들었다.

5강: 제국이라는 용광로 (헬레니즘 미술)

4세기 중반부터 발칸반도의 한 구석에서 자라난 그리스문화는 지중해 연안은 물론 인도까지 퍼져나간다. 이런 확산은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정복으로 실현되었다. 알렉산더의 생몰기간은 짧았지만, 그가 남긴 제국의 유산은 컸다. 그리스어를 공통어(koine)로 삼았던 제국의 위상은 동로마제국을 넘어서 르네상스까지 가 닿는 역사적 영향력을 지녔다. 뿐만 아니라 불교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경주 석굴암의 본존상도 헬레니즘미술의 흔적을 지닌다.

헬레니즘은 그리스의 고전과 오리엔탈 문화를 결합시킨 국제적인 양식이다. 이 국제양식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흥성하였고, 고대 로마제국도 헬레니즘의 정복자이자 계승자가 되었다. 나아가 당시 신흥종교였던 기독교 또한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혹은 그 세계관에서 배태되었다.

6강: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 미술)

기원전 753년에 탄생한 로마제국은 기원후 1453년까지 지속된 역사상 최장의 대제국이었다. 신성로마제국까지 합하면 그 기간은 더욱 더 늘어난다. 2천 년의 역사를 가진 대제국 로마는 초기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기원전후를 맞아 제정국가(황제의 통치)으로 그리고 4세기부터는 기독교의 제국으로 변화해갔다.

그리스가 서양문화의 초석을 이루었다면, 로마제국은 거기에 제도를 더했다. 무엇보다 법과 행정제도, 건축 그리고 문자(라틴어)는 지금까지도 서양문화의 핵심 축을 이룬다. 로마는 새로운 것을 창안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문화와 예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기화하였고, 또한 이를 통해 다양한 실용주의를 형성해냈다. 헬레니즘을 수용한 로마의 미술과 건축은 공학기술을 더하고, 실용적인 미학을 가미하여 돔 건축을 실현하였다. 판테온에서 아야 소피아 성당에 이르는 건축술은 오늘날 성 베드로 성당과 미국의 국회의사당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들이 초기에 세웠던 공화정체제는 팍스 아메리카를 구현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7강: 민족대이동과 제국의 몰락 (후기 로마 미술)

로마의 제정시기(황제시대)는 2세기 말엽 7현제시대까지 문화융성을 끝으로 시들기 시작했다. 넓은 제국의 변방과 끊임없이 벌어지는 이방민족의 침입 - 민족대이동 - 그리고 내부의 부패에 의해 제국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제국에 퍼져나간 기독교는 민간에서 국가종교로 규모를 키웠다.

제국의 몰락은 황제의 난립과 각종 제도의 난항에서 비롯되었다. 뿐만 아니라 민족대이동시대에 잦은 이방민족의 침탈에 국력의 소비가 커지면서, 제국은 통합의 힘을 잃어갔다. 로마미술이 과거에 보유했던 헬레니즘과 실용주의는 순식간에 와해되어갔다.

4세기에 들어 로마의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교로 채택하였다. 황제를 수장으로 하는 ‘체자로파피즘’의 기독교는 새로운 로마제국을 만들었고, 이런 종교와 국가의 혼합형 지배체제는 이후 유럽의 정치체제와 문화로 자리 잡았다. 초기 기독교의 고졸하고 초보적인 예술은 황제의 종교가 됨과 동시에 헬레니즘의 전통을 이어받아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미술은 헬레니즘의 양식과 도상을 그대로 전수받아서 다듬어나가는 과정을 밟았다.

8강: 빛나는 비잔틴 (비잔틴 미술)

4세기말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리되었다. 황제(콘스탄티누스)는 로마를 떠나 비잔티움으로 천도하였다. 이로서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이 형성되었고,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멸망하기까지 천년 이상을 존속한 국가로 기록되었다.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은 제국의 수도로서 로마를 능가하는 도시로 발전하였다.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2세 황제시기(6세기 중반)에 제국은 융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8세기에 등장한 소아시아와 중동의 이슬람세력과의 충돌과 11세기부터 불거진 십자군전쟁을 통해 국력이 쇠약해지면서 동로마제국도 세력을 잃어갔다. 

9-10세기에 동로마제국은 내부적으로 ‘성상파괴운동’이란 종교, 문화적 갈등이란 내환을 겪으면서 전후기로 분리된다. 이전 헬레니즘의 전통 속에서 발전했던 기독교미술은 이 시기를 만나 퇴행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후기에도 마케도니아 왕조 등에 의해 재건이 이루어지면서 현재 정교도 미술에 근간을 이루는 이콘화나 십자형-돔-교회 등 비잔틴의 전형적인 미술 양식을 구축해 나갔다.

9강: 신성로마제국과 유럽 (초기 중세의 유럽 미술)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던 5세기 중반부터 9세기까지 서유럽은 암흑의 시기를 보냈다. 고대의 유산은 이어지지 못했고, 행정체제를 갖춘 국가는 요원했다. 그러나 샤를마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하였고, 서서히 문명의 시대를 갖추어나갔다. 황제는 국가의 체계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중흥도 도모하였는데, 이를 가리켜 ‘샤를의 르네상스’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문학에서 ‘롤랑의 노래’와 같은 서사시가 나왔고, 건축에서도 과거의 규모와 양상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특히 로마식표기법이나 각종 미니어처 회화가 등장하면서 고전성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이 시기에 문화는 기독교, 이를테면 수도원을 중심으로 조성 및 발전되어나갔으며, 수도원 별로 학파와 화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서유럽의 외곽에는 여전히 문명의 초기수준에 불과한 이민족들이 지배하였고,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이들의 고유한 예술성과 결합한 독특한 조형스타일을 보여주었다.(스키타이와 비교!)

10강: 로마를 닮은 하지만 로마가 아닌 (로마네스크 미술)

로마네스크라는 명칭은 19세기에 와서 붙여진 것이다. 이 시대는 신성로마제국의 권좌를 이어받은 오토와 잘리어 왕조시기이며, 샤를마뉴가 발판을 놓았던 봉건제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켰다. 거기에 비잔틴제국과의 소통하면서 간접적으로 문화적 부흥을 도모할 수 있었다. 로마네스크는 이후 등장하는 고딕과 달리 이탈리아와 신성로마제국(독일)을 중심으로 흥기했다.

로마네스크 문화와 예술의 선도적 주체는 수도원이었다. 특히 클뤼니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 수도원네트워크를 통해 삽시간에 유럽 전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형성하였다. 이때에 성당건축은 수도원교회와 순례교회라는 구별되는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데, 겸덕과 장엄한 양태로 갈라진다. 이 시기에 시작된 수도원 중심의 종교개혁과 십자군운동이 유럽의 변화를 초래했다. 

11강: 십자군과 유럽 미술 (고딕미술)

고딕미술의 탄생은 1140년으로 특정되고 있으며, 촉발된 장소는 생 드니 성당이었다. 당시 수도원원장이던 쉬제르가 문헌으로 남긴 교회건축의 혁신성이 고딕의 신학적 토대를 이루었고, 그가 지은 성당이 최초의 고딕건축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13-15세기까지 고딕은 프랑스는 물론 전 유럽에 확산되었다.

고딕건축은 원통형 궁륭의 로마네스크를 극복하고 첨두아치를 원리로 삼은 교차궁륭과 외부의 공중부벽(flying Buttress)으로 화려하고 복잡한 축성체계를 이룩하였다. 이후 스테인드글라스와 장미창 그리고 온갖 부분에 장식된 조각물들은 고딕건축의 특징을 만들었다.

12강: 중세의 가을 (후기 고딕미술과 초기 르네상스)

호이징거에 따르면 중세 말기는 근세로 향한 출발점이다. 기독교에서 자생한 인본주의적 성향은 북유럽 후기고딕미술에서 자연주의(=사실주의)를 구가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새로운 성화의 양식과 비잔틴의 도상에서 추출한 새로운 화법들이 지오토 등을 통해 발전하면서 르네상스의 새벽을 열었다. 중세의 장인적 예술은 형식장르의 종합으로 나타난다. 특히 제단화나 기타 성상조각 등에서 조각, 회화 그리고 건축이 연관되어 있다. 이런 결합은 각 장르(형식)을 발전시키는 추동력을 만들었으며, 중세말기에 예술길드의 양상을 드러낸다.

후기 고딕 혹은 초기 르네상스는 중세의 규범적인 형식과 새로운 양식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갈등은 마치 천동설을 지동설로 대체하는 것처럼 예술에 대한 태도와 시각을 바꾸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강의 내용 - 2023  봄학기

전임 강사  : 고충환 평론가 

 

< 인문학적 미술 읽기 >

 

개념미술 이후 현대미술은 의미를 다투는 담론의 장이 되었습니다. 개념과 담론에 대한 이해가 곧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위한 전제가 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따라서 지난 학기 모더니즘 미술사 강의를 바탕으로 이번 강의에서는 주요 개념과 담론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텍스트 분량이 있으므로 강의 시작 일주일 전에 텍스트를 먼저 제시하고 각자 읽어온 후 질문과 토론 위주로 1시간을 진행하고, 이미지를 통한 사례분석으로 나머지 1시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1강. 오브제, 사물들의 세계_오브제의 이해

심미적 대상으로서의 물건/초현실주의와 오브제/물화, 페티시즘/동시대적 오브제/일상의 재발견

 

2강. 키치, 예술에서의 대중문화 논의_키치의 어원

통속적인 미학/키치에 대한 편견과 오해/키치, 자본주의의 적자/키치의 전략, 코드의 중층화/키치의 전략, 사물의 전치/키치의 사물형식, 가제트/키치의 욕망, 포르노그래피/키치적 의식

 

3강. 페미니즘, 재현의 정치학_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

페미니즘 운동의 배경/여성적인 전형의 조작/본질주의 페미니즘/다원주의 페미니즘/에코페미니즘

 

4강. 타자들의 담론_타자의 발견

타자의 이해/억압된 것들의 귀환/내 안의 타자/타자론/하위문화

 

5강. 모더니즘 서사의 수용과 변용

- 박기원, 이인현 작가와의 대화

6강. 작가와의 만남_작업실탐방_박미화작가님

7강. 퀴어와 캠프, 위반의 정치학_정상적인 성과 비정상적인 성

구경거리로서의 성/성역할론/캠프적 감수성/아름다운 공존

 

8강. 몸, 물질적 상상력과 물질의 상상력_몸의 언어

물질에 대한, 물질에 의한 상상력/물질적 상상력/우주적 살/ 불연속성/몸의 정치학/몸의 정치학 이후

 

9강. 유목주의, 탈경계와 탈정체의 실천_미술에 대한 재정의

유목의 다양한 양상들/유목론적 예술관념/트렉커 정신

 

10강. 동시대의 형상미술_재현과 서사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이미지/재현의 용법들/동시대의 서사미술/패러디의 용법/서사미술 이후

 

11강. 아티스트북_아티스트북의 이해

아티스트북의 기원/20세기 초 아티스트북/박스 형태의 아티스트북

개념미술가의 아티스트북/아티스트북의 다양한 형태/국내의 아티스트북/소통의 한 형식

 

12강. 사운드스컵쳐_학제간 연구

사운드아트, 사운드스컵쳐, 사운드인스톨레이션/사운드스컵쳐의 역사/사운드스컵쳐, 키네틱아트로부터

사운드스컵쳐, 플럭서스로부터/사운드스컵쳐의 동시대적 경향/국내의 사운드스컵쳐

 

강의 내용 - 2022  가을학기

전임 강사  : 고충환 평론가 

<모더니즘에서 컨템포러리까지>

 

 동시대 미술은 현대미술(시기적으로 대략 20세기 초 시작된)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므로 현대미술을 알아야 동시대 미술도 알 수 있다. 일부 예외가 없지 않지만 대개 동시대 미술은 현대미술에서 제기된 형식과 의미가 확장되고 심화되고 변주된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을까. 현대미술을 정의하고 규정하는 조건이 따로 있기라도 한 것인가. 도대체 현대미술이 뭔가. <모더니즘에서 컨템포러리까지>를 통해 바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강. 언어의 한 형식으로서의 예술, 정상성 언어와 비정상성 언어의 이해

2강. 인상주의, 빛과 색채의 향연

3강. 표현주의, 인간 내면의 비극적 세계관의 표현

4강. 사실주의와 현실주의

5강. 추상미술, 예술의 자율성을 추구한 내재율의 회화

6강. 입체파, 사물의 본질에 대한 기하학적 환원/ 미래파, 부정과 거부의 정신과 실천 논리

7강. 초현실주의, 무의식적 욕망에 대한 탐구

8강. 다다이즘과 마르셀 뒤샹 

9강.  제여란 작가 작품연구, 작가와의 만남

10강 . 팝아트_대중적인, 너무나 대중적인

11강. 개념미술, 아이디어가 곧 미술이다

12강. 설치미술, 공간의 재구조화/ 행위예술, 삶이 곧 예술이다

13강. 아방가르드_ 신화의 파괴 이후, 신화의 차용과 재해석

14강. 신구상주의 회화와 자유구상, 수상적 표현의 복권과 히화적 자유의 추구

15강. 미니멀리즘,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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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61.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로 137 번길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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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Mon |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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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는 길 

버스 | 서울에서 9003, 9004 ,9007 ,9007-1 , 4103

운중동행정복지센터 하차 도보 5분

 

지하철 | 판교역 하차후 운중동행정복센터행 버스(10분) 도보 5분

 

 

주차안내 | 대승민영주차(아이파킹주차장), 제일주차장,

운중동2공영주차장, 운중동1공영주차장

 

 

도보 2분

 

 

(유료 / 30분 2,000원/ 10분당 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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