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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S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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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에서 각계의 사람들이 모여 예술과 문학을 나누던 사교 집회를 뜻하는 ‘살롱(salon)’

운중화랑은 미술사 및 현대미술 강의,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미술을 사랑하시는 분들과 함께 만드는 소통의 장이 되고자 합니다.

개강 매월 2째 화요일 (유료강의)​

수업일_ 월 3회 매월 2,3,4,주차 화요일

정원 10명(수시 모집)  T. 031-703-2155

 


 

강의 내용 - 2024 하반기

전임 강사 :김정락

서울대 미대(서양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미술사학(철학박사)

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 외 15개 대학에서 강의, 서울여대 및 인천가톨릭대 겸임교수 및 초빙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전)교수,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크라운 제과(사외이사)

저서 및 논문: 미술의 불복종, 코리아 디아스포라 외 12권, 학술논문 21편

 

<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 이전까지 >

15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서양미술은 과거와는 달리 가파른 속도로 발전한다. 주목되는 현상은 미술의 세속화다. 중세 동안 종교에 귀속되었던 미술은 사적인 취미와 욕망에 부응하였다. 취미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어서 유행과 사조를 동반했다. 미술시장의 형성도 이런 현상이 시너지로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장르(형식)의 다양화가 이루어지면서, 오늘날 다양한 미술이 가능한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1강: 르네상스의 전조 혹은 피렌체의 봄

르네상스 이후 근세미술은 다양한 맥락에서 그 지평을 넓혀갔다. 과학(수학)과 문학이 미술과 연관을 맺었고, 또한 미술은 정치사회적인 영역에서도 의미와 가치를 형성하였다. 이와 함께 기술적인 발전도 가속화되었다.

 

2강: 인본주의와 과학혁명 그리고 미술의 학문화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다빈치, 뒤러 등

르네상스가 가져온 혁명은 미술(시각문화)에 현실성과 현실과의 밀접한 관계성이었다. 신본주의 시대(중세)에 관념적으로 멀었던 미술 속 세계를 현실과의 연관성으로 본다는 새로운 조형의식은 원근법(과학주의) 등의 자연과학과 인본주의(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시각)에 동반한 현상이었다. 미술형식의 변화(유화의 등장)와 새로운 후원자의 등장 그리고 체계적인 미술교육 및 전시제도가 르네상스 미술을 만들어냈다.

 

3강: 전성기 르네상스와 바티칸 내의 경쟁자들

         브라만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최전성기 르네상스를 구가했던 로마의 미술은 정치적으로도 유럽의 구심을 이루는 곳이었다. 예술가들도 정치적인 격랑 속에서 명멸하였고, 미술도 정치적 격랑을 암시하였다. 고대(고전)의 부활은 인본주의와 결합하면서, 다양한 표현적 실험과 결과를 만들어냈다. 미술은 현상의 외피만이 아니라, 그것의 근원까지 파고들어가는 과학적이며 또한 인문학적(철학)인 행위가 되었다. 기술적 차원에서 학술적 수준에 이르면서 '디제뇨(Disegno)'라는 개념도 낳았다.   

 

4강: 중세의 가을: 북유럽의 르네상스 

얀 반 아이크부터 알브레히트 뒤러까지

북유럽의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와 다른 원천에서 출발하였다. 신학에 근본을 둔 인본주의의 생성과 이에 따른 미술의 작용이다. 그래서 중세(고딕시기)에 발전된 극사실적 재현과 상징적인 표현력이 공존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한자동맹이나 길드조직을 통해 미술은 기술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남부의 르네상스를 넘어서는 진보된 조형의식을 갖추었다. 유화의 탄생과 개인에 대한 사상은 바로 사회적 변화에 따른 시너지였다. 북유럽의 르네상스는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진화론적이며, 동시에 매우 사회적인 양상을 띠었다.  

 

5강: 매너리즘 혹은 포스트-르네상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사이에 '매너리즘(Mannerism)'이란 사조가 존재했다. 바로크도 아니고 르네상스와도 다르지만, 독보적인 양식사라 보기엔 간헐적이고 우발적이었다. 그러나 그 확산은 전 유럽을 관통하는 양식이다. 르네상스가 마련한 고전적 형상문법을 화려하고 복잡하게 전개시키면서, 매너리즘은 다양한 예술적 혹은 감각적 실험을 감행하였다. 이성적인 르네상스에 비하면 감성의 요소가 더 강했다. 궁정(세속)의 감성과 결합하면서, 공감각적 효과나 작용에 천착하였으며 유희적인 양태를 펼쳤던 미술의 역사로 정의할 수 있다.

 

6강: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바로크: 고전주의와 바로크의 대결

바로크 미술은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갈등 속에서 확산된 유럽의 미술양식이다. 바로크의 특징은 예술의 세속화에 있으며, 이런 기조 위에서 운동성과 극장성이 강조되었다. 과거 성극장(Theatrum Sacrum)이 세속극장(Theatrum Mundi)로 이전하면서, 오늘날 미술개념에 가까운 형식과 의식이 조성되었다. 그 규범을 이룬 것은 르네상스에 기반 한 고전주의지만, 바로크는 반고전주의적 태도도 동시에 형성시켰다. 또한 미술의 장르별 전문화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미술교육의 체계도 형성해 나갔다. 바로크는 현재까지도 유럽의 외관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사조가 되었다. 

 

7강: 네덜란드의 황금기: 프란츠 할스부터 베르메르까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이어서 해양국가로 성장한 네덜란드는 경제적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와 더불어 미술에서도 혁혁한 발전을 이루었다. 특유의 사실주의와 실용주의가 결합된 네덜란드 회화는 시민적 취미에 상응하면서 다양한 장르를 개척하고, 자유로운 미술시장을 펼쳤다.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그리고 베르메르로 이어지는 거장들의 등장은 그 풍요로움과 다채로움을 선사하였다. 나아가 전통적인 회화술에 있어서 정점을 찍었고, 오감을 자극하는 미시적인 재현은 어느 시대도 누리지 못한 시각적 호사였다.

 

8강: 로코코와 우아한 살롱미술

18세기 초중반을 지배한 양식을 로코코(rococo)라고 하며, 이 용어는 프랑스에서 조개무늬를 의미하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유래했다. 합리적이고 질서를 중시하는 바로크까지의 전통에 비하여 로카이유는 자연스럽고 불확정적인 변화를 애호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개념은 장식뿐만 아니라, 건축의 공간성에도 확장되어서 다양한 변종을 불러왔다. 회화나 조각에 있어서도 풍속화나 서정적인 주제들이 선호되었다. 그래서 바로크의 ‘위대한 양식’은 경쾌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전환되었고, 그런 미각을 형성했던 본거지는 살롱(salon)이었다. 도시 내 저택인 레지던스나 호텔 내의 응접실 혹은 라운지에 해당하는 살롱은 사적이면서도 사교공간으로 활용되었고, 여기서 로코코 문화가 싹트고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살롱문학, 살롱음악 그리고 살롱미술들이 대거 탄생하였고, 이런 것들이 로코코의 예술현상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9강: 신고전주의: 오래된 미래를 찾다.

신고전주의는 고대와 밀접한 연관성 속에서 자라난 새로운 양식이자 경향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고전주의를 수정하고 보다 원리주의적인 행태로 발전시켜 나갔다. 18세기 중반부터, 계몽주의의 역사관 속에서, 신고전주의는 바로크와 로코코의 과도한 장식성이나 비윤리적인 조형의식에 새로운 질서와 윤리적인 취미를 부여하려는 지식계층들의 문화프로그램이었다. 나아가 신고전주의는 미학이나 고고학 그리고 미술사의 탄생과 발전에 힘입어 보다 체계적인 미술에 대한 연구를 이끌어냈으며, 정치사적으로도 지식관료의 미적 감수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이슈로 나타났다.

10강: 혁명과 미술: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사실상 고전주의의 의붓형제라 할 만큼 공존하면서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 예술현상이었다. 경계는 복고적(보수적) 태도를 견지했던 신고전주의보다는 진보적인 태도를 취한 것도 낭만주의의 특징이다. 이 사조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나폴레옹의 등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특히 체제간의 갈등으로 격해진 사회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열정과 정념을 예술의 화력으로 삼았던 것이 낭만주의다. 낭만주의는 이후 여러 신 사조를 열어갈 최초의 문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11강: 사실주의와 비더마이어 그리고 라파엘전파

12강: 아카데미즘 미술

강의 내용 - 2023 하반기

전임 강사  : 김정락

서울대 미대(서양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미술사학(철학박사)

서울대, 카이스트, 고려대 외 15개 대학에서 강의, 서울여대 및 인천가톨릭대 겸임교수 및 초빙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전)교수,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크라운 제과(사외이사)

저서 및 논문: 미술의 불복종, 코리아 디아스포라 외 12권, 학술논문 21편

 

< 고대부터 근세 까지 >

 

1강. 흔적을 남기는 인간 (선사시대 미술)

 인류의 역사는 흔적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런 연구를 위한 학문이 고고학 이나 인류학이다. 고고학은 흔적을 발굴하고, 그것을 토대로 글로 전하지 못 하는 삶과 의식을 복원하는 연구 방식이다. 그렇게 발굴되고 복원된 문명 이전의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는 자연관과 조형관은 마치 유전자처럼 인류의 의식 속 에 뿌리를 내려 현대사회까지 지속되고 있다.

원시와 초기문명의 흔적 중에서 미술로 분류되는 여러 조형물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 공포감 그리고 생존을 위한 다양한 의식들이 녹아 있다. 또한 현 대미술에서도 논의 가능한 다양한 의제와 담론도 포함 되어있다.

2강. 문명의 양끝에서 만나는 미술 (원시미술과 현대미술)

현대미술은 문명의 최고수준에 이른(?) 시점에서 잃어버린 원초적 감성을 찾는 것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입체파, 야수파, 표현주의 등등에서 등장하는 반 근대적 혹은 반문명적 형상화들은 헬레니즘 이래의 서구전통에 지쳤던 그리고 그 한계에 봉착했던 현대미술의 도전이었다.

원시주의(primitivism)은 ‘순수성’의 회복이란 목적 외에도, 인간 본연의 감성 과 감정 그리고 창작의 자유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모더니즘에 개입 되었던 미개미술은 원시미술의 본질을 지닌 것으로 판단되었다. 각종 제의적 형 상들이나 (벽사)가면 등이 현대미술, 이를테면 피카소나 야수파 화가들에 의해 부활되었고, 표현주의의 조형적 근간을 이루었다. 20세기 초반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원시미술에 몰입하여 현대적인 번안을 이루었다. 사실상 추상 미술 이나 액션페인팅(추상표현주의)까지 원시 및 미개미술의 영향력은 지속되었다.

3강 신(들)의 탄생 (수메르와 이집트 미술)

고대의 문명은 부족국가에 해당하는 큰 공동체에 의해 유지되었고, 공동체의 이념을 만든 것은 신화였다. 즉 신들의 이야기는 창조와 창건을 설명하고, 이념(신념)을 통합시키는 이데올로기였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나 이집트의 신화는 신뿐만 아니라, 특권적 계층의 지배를 합리화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바라본 우주, 세계, 자연을 설명하는 원리이자 근거가 되었다. 나아가 삶과 죽음을 초월하며, 다양한 권능을 가진 신화적 존재들이 탄생하면서 인간은 거대한 문명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찾았다.

초기의 신정체제나 제사장-왕의 탄생은 거의 모든 초기문명에서 공통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의 형상화를 이루면서, 문명시대의 예술을 만들어갔다. 다양한 신전건축은 물론 피라미드를 비롯한 장례건축 그리고 이를 장식하는 여러 장르의 예술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4강: 신화가 들려주는 세계 (그리스 미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그리고 여러 서사들을 통해 전해지는 그리스의 신화와 역사는 문명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과거 문명과의 차이는 신과 인간의 엄격한 구분과 비인간화를 극복하고, 인본주의적 태도와 의식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인본주의는 이후 민주주의 등 다양한 진보적인 체제와 사상이 등장하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스의 신화는 적어도 3 세대로 분류되는 신들의 역사를 보여준다. 가이아로 상징되는 최초의 자연신들로부터 우라노스나 크로노스와 같은 거인족(신들의 아버지들)이 2세대를 이루었고, 다시금 이들로부터 올림포스의 신들이 탄생했다.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헤라 등이 자식들을 낳아서 아폴로, 아테네, 아르테미스 등등이 등장했다. 이 신들은 자연신의 권능과 더불어 인간의 역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관계성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문학과 미술은 이러한 신들의 개별적 형상은 물론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들을 재현하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기원전 8세기 즈음에 틀을 갖춘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서사다. 신과 인간들의 운명이 트로이전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양상 속에서 서사는 역사상 최초로 인간에 대한 탐구와 사유를 펼친다. 이렇게 발전시켜나간 그리스의 인본주의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democracy)와 문화적으로는 고전(classic)을 형성하여 서구문화의 초석을 다졌다.

신화는 문명 이전의 역사를 은유한 것이지만, 세계관과 인간관을 담고 있다. 그리스의 신화는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을 함유하고 있는 고차원적인 문화적 산물이다. 이것을 자양분으로 문학과 미술 등 다양한 예술이 자라났고, 거기에 형식적인 기술과 정서적인 함양이 동시에 이루어져 고전이란 준거를 만들었다.

5강: 제국이라는 용광로 (헬레니즘 미술)

4세기 중반부터 발칸반도의 한 구석에서 자라난 그리스문화는 지중해 연안은 물론 인도까지 퍼져나간다. 이런 확산은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정복으로 실현되었다. 알렉산더의 생몰기간은 짧았지만, 그가 남긴 제국의 유산은 컸다. 그리스어를 공통어(koine)로 삼았던 제국의 위상은 동로마제국을 넘어서 르네상스까지 가 닿는 역사적 영향력을 지녔다. 뿐만 아니라 불교미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경주 석굴암의 본존상도 헬레니즘미술의 흔적을 지닌다.

헬레니즘은 그리스의 고전과 오리엔탈 문화를 결합시킨 국제적인 양식이다. 이 국제양식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흥성하였고, 고대 로마제국도 헬레니즘의 정복자이자 계승자가 되었다. 나아가 당시 신흥종교였던 기독교 또한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혹은 그 세계관에서 배태되었다.

6강: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 미술)

기원전 753년에 탄생한 로마제국은 기원후 1453년까지 지속된 역사상 최장의 대제국이었다. 신성로마제국까지 합하면 그 기간은 더욱 더 늘어난다. 2천 년의 역사를 가진 대제국 로마는 초기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기원전후를 맞아 제정국가(황제의 통치)으로 그리고 4세기부터는 기독교의 제국으로 변화해갔다.

그리스가 서양문화의 초석을 이루었다면, 로마제국은 거기에 제도를 더했다. 무엇보다 법과 행정제도, 건축 그리고 문자(라틴어)는 지금까지도 서양문화의 핵심 축을 이룬다. 로마는 새로운 것을 창안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문화와 예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기화하였고, 또한 이를 통해 다양한 실용주의를 형성해냈다. 헬레니즘을 수용한 로마의 미술과 건축은 공학기술을 더하고, 실용적인 미학을 가미하여 돔 건축을 실현하였다. 판테온에서 아야 소피아 성당에 이르는 건축술은 오늘날 성 베드로 성당과 미국의 국회의사당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들이 초기에 세웠던 공화정체제는 팍스 아메리카를 구현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7강: 민족대이동과 제국의 몰락 (후기 로마 미술)

로마의 제정시기(황제시대)는 2세기 말엽 7현제시대까지 문화융성을 끝으로 시들기 시작했다. 넓은 제국의 변방과 끊임없이 벌어지는 이방민족의 침입 - 민족대이동 - 그리고 내부의 부패에 의해 제국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제국에 퍼져나간 기독교는 민간에서 국가종교로 규모를 키웠다.

제국의 몰락은 황제의 난립과 각종 제도의 난항에서 비롯되었다. 뿐만 아니라 민족대이동시대에 잦은 이방민족의 침탈에 국력의 소비가 커지면서, 제국은 통합의 힘을 잃어갔다. 로마미술이 과거에 보유했던 헬레니즘과 실용주의는 순식간에 와해되어갔다.

4세기에 들어 로마의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교로 채택하였다. 황제를 수장으로 하는 ‘체자로파피즘’의 기독교는 새로운 로마제국을 만들었고, 이런 종교와 국가의 혼합형 지배체제는 이후 유럽의 정치체제와 문화로 자리 잡았다. 초기 기독교의 고졸하고 초보적인 예술은 황제의 종교가 됨과 동시에 헬레니즘의 전통을 이어받아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미술은 헬레니즘의 양식과 도상을 그대로 전수받아서 다듬어나가는 과정을 밟았다.

8강: 빛나는 비잔틴 (비잔틴 미술)

4세기말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리되었다. 황제(콘스탄티누스)는 로마를 떠나 비잔티움으로 천도하였다. 이로서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이 형성되었고,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멸망하기까지 천년 이상을 존속한 국가로 기록되었다.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은 제국의 수도로서 로마를 능가하는 도시로 발전하였다.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2세 황제시기(6세기 중반)에 제국은 융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8세기에 등장한 소아시아와 중동의 이슬람세력과의 충돌과 11세기부터 불거진 십자군전쟁을 통해 국력이 쇠약해지면서 동로마제국도 세력을 잃어갔다. 

9-10세기에 동로마제국은 내부적으로 ‘성상파괴운동’이란 종교, 문화적 갈등이란 내환을 겪으면서 전후기로 분리된다. 이전 헬레니즘의 전통 속에서 발전했던 기독교미술은 이 시기를 만나 퇴행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후기에도 마케도니아 왕조 등에 의해 재건이 이루어지면서 현재 정교도 미술에 근간을 이루는 이콘화나 십자형-돔-교회 등 비잔틴의 전형적인 미술 양식을 구축해 나갔다.

9강: 신성로마제국과 유럽 (초기 중세의 유럽 미술)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던 5세기 중반부터 9세기까지 서유럽은 암흑의 시기를 보냈다. 고대의 유산은 이어지지 못했고, 행정체제를 갖춘 국가는 요원했다. 그러나 샤를마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하였고, 서서히 문명의 시대를 갖추어나갔다. 황제는 국가의 체계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중흥도 도모하였는데, 이를 가리켜 ‘샤를의 르네상스’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문학에서 ‘롤랑의 노래’와 같은 서사시가 나왔고, 건축에서도 과거의 규모와 양상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특히 로마식표기법이나 각종 미니어처 회화가 등장하면서 고전성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이 시기에 문화는 기독교, 이를테면 수도원을 중심으로 조성 및 발전되어나갔으며, 수도원 별로 학파와 화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서유럽의 외곽에는 여전히 문명의 초기수준에 불과한 이민족들이 지배하였고,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이들의 고유한 예술성과 결합한 독특한 조형스타일을 보여주었다.(스키타이와 비교!)

10강: 로마를 닮은 하지만 로마가 아닌 (로마네스크 미술)

로마네스크라는 명칭은 19세기에 와서 붙여진 것이다. 이 시대는 신성로마제국의 권좌를 이어받은 오토와 잘리어 왕조시기이며, 샤를마뉴가 발판을 놓았던 봉건제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켰다. 거기에 비잔틴제국과의 소통하면서 간접적으로 문화적 부흥을 도모할 수 있었다. 로마네스크는 이후 등장하는 고딕과 달리 이탈리아와 신성로마제국(독일)을 중심으로 흥기했다.

로마네스크 문화와 예술의 선도적 주체는 수도원이었다. 특히 클뤼니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 수도원네트워크를 통해 삽시간에 유럽 전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형성하였다. 이때에 성당건축은 수도원교회와 순례교회라는 구별되는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데, 겸덕과 장엄한 양태로 갈라진다. 이 시기에 시작된 수도원 중심의 종교개혁과 십자군운동이 유럽의 변화를 초래했다. 

11강: 십자군과 유럽 미술 (고딕미술)

고딕미술의 탄생은 1140년으로 특정되고 있으며, 촉발된 장소는 생 드니 성당이었다. 당시 수도원원장이던 쉬제르가 문헌으로 남긴 교회건축의 혁신성이 고딕의 신학적 토대를 이루었고, 그가 지은 성당이 최초의 고딕건축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13-15세기까지 고딕은 프랑스는 물론 전 유럽에 확산되었다.

고딕건축은 원통형 궁륭의 로마네스크를 극복하고 첨두아치를 원리로 삼은 교차궁륭과 외부의 공중부벽(flying Buttress)으로 화려하고 복잡한 축성체계를 이룩하였다. 이후 스테인드글라스와 장미창 그리고 온갖 부분에 장식된 조각물들은 고딕건축의 특징을 만들었다.

12강: 중세의 가을 (후기 고딕미술과 초기 르네상스)

호이징거에 따르면 중세 말기는 근세로 향한 출발점이다. 기독교에서 자생한 인본주의적 성향은 북유럽 후기고딕미술에서 자연주의(=사실주의)를 구가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새로운 성화의 양식과 비잔틴의 도상에서 추출한 새로운 화법들이 지오토 등을 통해 발전하면서 르네상스의 새벽을 열었다. 중세의 장인적 예술은 형식장르의 종합으로 나타난다. 특히 제단화나 기타 성상조각 등에서 조각, 회화 그리고 건축이 연관되어 있다. 이런 결합은 각 장르(형식)을 발전시키는 추동력을 만들었으며, 중세말기에 예술길드의 양상을 드러낸다.

후기 고딕 혹은 초기 르네상스는 중세의 규범적인 형식과 새로운 양식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갈등은 마치 천동설을 지동설로 대체하는 것처럼 예술에 대한 태도와 시각을 바꾸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강의 내용 - 2023 상반기

전임 강사  : 고충환 평론가 

 

< 인문학적 미술 읽기 >

 

개념미술 이후 현대미술은 의미를 다투는 담론의 장이 되었습니다. 개념과 담론에 대한 이해가 곧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위한 전제가 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따라서 지난 학기 모더니즘 미술사 강의를 바탕으로 이번 강의에서는 주요 개념과 담론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텍스트 분량이 있으므로 강의 시작 일주일 전에 텍스트를 먼저 제시하고 각자 읽어온 후 질문과 토론 위주로 1시간을 진행하고, 이미지를 통한 사례분석으로 나머지 1시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1강. 오브제, 사물들의 세계_오브제의 이해

심미적 대상으로서의 물건/초현실주의와 오브제/물화, 페티시즘/동시대적 오브제/일상의 재발견

 

2강. 키치, 예술에서의 대중문화 논의_키치의 어원

통속적인 미학/키치에 대한 편견과 오해/키치, 자본주의의 적자/키치의 전략, 코드의 중층화/키치의 전략, 사물의 전치/키치의 사물형식, 가제트/키치의 욕망, 포르노그래피/키치적 의식

 

3강. 페미니즘, 재현의 정치학_아방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

페미니즘 운동의 배경/여성적인 전형의 조작/본질주의 페미니즘/다원주의 페미니즘/에코페미니즘

 

4강. 타자들의 담론_타자의 발견

타자의 이해/억압된 것들의 귀환/내 안의 타자/타자론/하위문화

 

5강. 모더니즘 서사의 수용과 변용

- 박기원, 이인현 작가와의 대화

6강. 작가와의 만남_작업실탐방_박미화작가님

7강. 퀴어와 캠프, 위반의 정치학_정상적인 성과 비정상적인 성

구경거리로서의 성/성역할론/캠프적 감수성/아름다운 공존

 

8강. 몸, 물질적 상상력과 물질의 상상력_몸의 언어

물질에 대한, 물질에 의한 상상력/물질적 상상력/우주적 살/ 불연속성/몸의 정치학/몸의 정치학 이후

 

9강. 유목주의, 탈경계와 탈정체의 실천_미술에 대한 재정의

유목의 다양한 양상들/유목론적 예술관념/트렉커 정신

 

10강. 동시대의 형상미술_재현과 서사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이미지/재현의 용법들/동시대의 서사미술/패러디의 용법/서사미술 이후

 

11강. 아티스트북_아티스트북의 이해

아티스트북의 기원/20세기 초 아티스트북/박스 형태의 아티스트북

개념미술가의 아티스트북/아티스트북의 다양한 형태/국내의 아티스트북/소통의 한 형식

 

12강. 사운드스컵쳐_학제간 연구

사운드아트, 사운드스컵쳐, 사운드인스톨레이션/사운드스컵쳐의 역사/사운드스컵쳐, 키네틱아트로부터

사운드스컵쳐, 플럭서스로부터/사운드스컵쳐의 동시대적 경향/국내의 사운드스컵쳐

 

강의 내용 - 2022 하반기

전임 강사  : 고충환 평론가 

<모더니즘에서 컨템포러리까지>

 

 동시대 미술은 현대미술(시기적으로 대략 20세기 초 시작된)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므로 현대미술을 알아야 동시대 미술도 알 수 있다. 일부 예외가 없지 않지만 대개 동시대 미술은 현대미술에서 제기된 형식과 의미가 확장되고 심화되고 변주된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을까. 현대미술을 정의하고 규정하는 조건이 따로 있기라도 한 것인가. 도대체 현대미술이 뭔가. <모더니즘에서 컨템포러리까지>를 통해 바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강. 언어의 한 형식으로서의 예술, 정상성 언어와 비정상성 언어의 이해

2강. 인상주의, 빛과 색채의 향연

3강. 표현주의, 인간 내면의 비극적 세계관의 표현

4강. 사실주의와 현실주의

5강. 추상미술, 예술의 자율성을 추구한 내재율의 회화

6강. 입체파, 사물의 본질에 대한 기하학적 환원/ 미래파, 부정과 거부의 정신과 실천 논리

7강. 초현실주의, 무의식적 욕망에 대한 탐구

8강. 다다이즘과 마르셀 뒤샹 

9강.  제여란 작가 작품연구, 작가와의 만남

10강 . 팝아트_대중적인, 너무나 대중적인

11강. 개념미술, 아이디어가 곧 미술이다

12강. 설치미술, 공간의 재구조화/ 행위예술, 삶이 곧 예술이다

13강. 아방가르드_ 신화의 파괴 이후, 신화의 차용과 재해석

14강. 신구상주의 회화와 자유구상, 수상적 표현의 복권과 히화적 자유의 추구

15강. 미니멀리즘,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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